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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디지털스토리] 40년간 묶인 고속도로 제한속도…이젠 높여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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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신아현 인턴기자 = 지난달 일본 경찰청은 자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속도로인 신토메이의 제한 속도를 110km/h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1963년 개통 이후 54년만의 변화다. 신토메이 고속도로 일부 50km 구간에만 실험적으로 적용되며 별 이상이 없을 경우 120km/h로 더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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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제한 속도가 올라가면 사고는 감소할까, 그 반대일까. 이 논쟁은 우리나라에서도 진행 중이다. 2024년 완공 예정인 서울~세종고속도로의 설계속도가 140km/h 수준으로 올릴 예정이라는 소식 때문이다. 제한 속도를 두고 오가는 찬반 논쟁에 대해 짚어봤다.

◇ 과속 인한 사고는 미미...속도 제한으로 오히려 사고 유발

우리나라 도로의 자동차는 40년 가까이 같은 속도에 묶여왔다. 1979년 이후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00~110km/h 수준에서 머물렀다. 그 사이 자동차의 성능은 괄목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그 능력을 대한민국에서는 뽐낼 수 없었다. 지난 9월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제네시스 G70의 경우, 공식 제로백(0에서 100km/h까지 도달 속도)은 4.7초에 불과하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까지 오르는 데 5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대자동차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의 성능은 30~4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1985년 출시된 1세대 쏘나타 2.0 모델은 110마력, 최대토크(엔진의 회전력이 가장 강할 때의 힘) 16.7kg.m의 성능을 가졌다. 올해 출시된 7세대 쏘나타 뉴라이즈 2.0 터보 모델의 경우 245마력, 최대토크 36.0kg.m까지 발전했다.

32년 동안 차의 성능은 2배 이상 향상된 반면, 제한 속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다는 것이다. 한 유명 자동차 동호회 회원은 "우리나라 자동차 성능의 발전이 외국에 비해 다소 더딘 이유 중 하나가 변하지 않은 제한 속도라고 생각한다"며 "고성능 차를 만들어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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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속도 완화는 고속도로의 능력치도 성장시킨다. 올해 초 국토교통부는 세종고속도로의 설계속도를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도로 수송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진국 수준의 도로 설계 기준을 마련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또 첨단 자율 기능도 적용할 예정이다.

이런 점 때문에 1995년 당시 여야의원 26명이 경부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일부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행 시간 절약으로 인해 도로 용량이 커져 더 많은 교통량을 처리할 수 있으며 화물 수송의 효율이 증대될 가능성이 크다. 사고를 우려한 일부 시민단체와 보험 업체의 반대에 막혀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가 높은 다른 국가의 경우,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오히려 적다는 통계도 있다.

국토교통부와 각국 대사관 등에 따르면 프랑스 130km/h(예외 구간 존재), 폴란드 140km/h 등 현재 우리나라 수준(100~110km/h)보다 높은 편이다. 독일의 아우토반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은 제한 속도가 없다. 반면에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오히려 우리보다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는 13.7건, 폴란드는 13.2건, 독일은 55건으로 우리나라(93.7건)보다 최대 7분의 1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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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토메이 고속도로 구간(출처=일본 신토메이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번 일본의 고속도로 속도 상향 조정에 참여한 다카시 오구치 도쿄대학 교통관리 제어 전문가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통행량 조사 결과, 특정 구간의 경우에서 120km/h로 달리는 승용차가 85%에 달했지만, 더 큰 사고 위험은 없었다"고 말했다. 상향 조정한 속도만큼 달린 운전자가 특별히 더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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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으로 발생한 사고 건수 자체도 생각보다 미미하다.

지난해 고속국도에서 일어난 사고 4천347건 중 가장 많이 발생한 사고유형은 '안전운전 의무 불이행'으로 48.3%인 2천968이었다. 과속사고는 총 36건으로 전체의 0.8%에 불과했다.

오히려 과속 단속으로 유발된 사고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실제 지난달 창원터널사고 운전자는 과속 단속 카메라를 발견하고 갑작스럽게 속도를 줄이려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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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서울 방면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던 전 모(21·서울시 서대문구) 씨는 아찔한 경험을 겪었다. 과속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급히 줄이는 '캥거루 운전자' 때문이다. 전 씨는 "갑자기 끼어든 차량이 단속 구간 바로 앞에서 급제동하는 바람에 추돌사고가 날 뻔했다"며 "조금만 방심했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2011년부터 6년간 영동고속도로 단속지점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조사한 결과, 지점 단속 지점에서 일어난 사고는 구간 단속의 2배에 달했다. 지점단속지점 전후 1km 이내에 발생한 사고는 km당 연평균 1.01건으로 구간단속지점(0.59건)보다 높다.

도로교통공단 울산경남지부 황준순 교수는 "지점단속은 일시적 감속효과만 있을 뿐 특정 구간의 속도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며 "이 구간에서 운전자들이 갑자기 속도를 줄여 차가 막히거나 추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치사율 높은 과속…대기오염에도 악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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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건수는 적다 하더라도 치사율은 높다는 사실은 제한 속도 상향을 망설이게 만든다.

지난해 전국 고속국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원인 중 치사율이 가장 높은 것은 과속이다. 36건 뿐이지만 사망자는 8명으로 22.2%의 치사율을 보였다.

한국교통연구원 임재경 연구위원은 "차량의 속도가 빠를수록 충격량이 커지기 때문에 치사율이 높다"고 말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0km/h 주행 중 충돌해 받는 충격은 810m 상공에서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여의도 63빌딩(274m)보다 3배나 높은 위치다.

제한 속도가 올라갈수록 사상자가 발생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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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른 속도는 대기오염에도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경차 기준으로 100km/h 속도로 달릴 때 발생하는 대기오염 배출량은 60km/h 주행 시보다 8.7배 늘어난다. 120km/h일 경우 무려 23배로 급등한다. 60km/h로 달리는 중형차의 경우 100km/h는 10.9배, 120km/h는 12.8배의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국립환경과학원 측은 이런 현상에 대해 "100km/h를 넘겨 운전하면 연료가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물질도 급격히 증가한다"라고 해석했다.

승용차를 제외한 화물차, 버스 등 대형차의 제한 속도 역시 함께 높여야 하는지도 합의해야 할 문제다.

자동차 관리법상 모든 11인승 이상 승합 차량은 시속 110km, 총 중량 3.5t 이상 화물차량은 시속 90km로 최고 속도 제한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불법으로 해제한 뒤 과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5월 국민안전처가 전국 5개 지역에서 단속을 벌인 결과 대형차량 154대 가운데 20대가 속도제한장치를 불법으로 해제한 상태로 운행하고 있었다. 8대 중 1대 꼴이다.

같은 달 속도 제한 해체업자에게 의뢰해 전세버스와 화물차의 제한 속도를 풀고 과속 등 난폭운전을 한 운전기사 198명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운전경력 3년 차 임 모(22·서울시 양천구) 씨는 "운전할 때 옆에서 대형화물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때마다 위압감이 느껴진다"며 "지금도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인데 여기서 제한 속도를 더 높이면 위험도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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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제한 속도 해제 장비 [인천지방경찰청 제공=연합뉴스]



무엇보다 이런 변화가 운전자들의 안전 의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자동차 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과속은 운전자들의 안전불감증을 조장한다"며 "속도가 빨라지면 제동 거리가 길어지고 안전 거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등 교통 안전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운전 경력 30년을 자랑하는 신 모(53) 씨는 "지금도 운전대를 잡으면 실제 속도를 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제한 속도가 높아지면 이런 불감증이 더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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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우토반에서 속도 및 차량 크기에 따라 차선 별로 주행하는 모습(출처=지오그래픽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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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 연구위원은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가 높지만 철저하게 지정차선제를 준수하기 때문에 사고 건수는 적다"며 "속도 제한을 논하기 전에 교통문화를 지키려는 인식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김유정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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