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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디지털스토리] 40·50대 남성들 취중 폭력 많다…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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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조윤진 인턴기자 = 지난 11월 청주 청원에서 만취상태였던 50대 남성이 노래방에 불을 질렀다. 경찰에 붙잡힌 그는 "초등학교 동창인 노래방 주인이 놀아주지 않아 화가 났다"고 말했다.

지난 5일에는 상당구 용암동 도로에서 A(50)씨가 길에 정차 중이던 차에 올라타 일면식 없는 운전자를 주먹으로 폭행했다. 경찰에 연행된 A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는 주취폭력(이하 주폭)이 꾸준히 잇따르고 있다.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파출소에서 행패를 부리는 식이다.

특히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40~50대 중년 남성이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년남성의 주폭 실태를 짚어봤다.

◇ 폭력사범 10명 중 3명이 주폭...중장년이 제일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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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난 9월부터 두 달간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주폭 1만명 이상을 검거했다. 단속결과 주폭은 1만7천210명으로 전체 폭력사범의 30.2%를 차지했다. 이들은 술에 취해 폭력(1만2천414건)을 행사하고, 재물손괴(2천263건), 업무방해(1천815건), 협박(647건) 등을 일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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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취폭력ㆍ공무집행방해의 경우 재범률은 높은 수준이었다. 이번에 적발된 주취사범 10명 중 7명(75.8%)은 전과자였다. 전과 1~5범이 38.6%로 가장 많았고 전과 21범 이상도 7.9%에 달했다.

특히 주취자는 40~50대 중년층이 52.8%로 가장 많았다. 20대, 30대 주취자는 각각 16.8%, 19.1%로 집계됐다. 앞서 2012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경찰 단속에 검거된 주폭 200여명 중 73%(146명)가 40~50대 중장년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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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계자는 "술을 마시고 폭행을 반복해서 일삼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주폭의 상당수가 무직이었고, 이혼해 홀로 생활하거나 노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 중년 남성 3명 중 1명 '고위험 음주군', 도피처가 된 술

중년 남성의 주폭 비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중년 남성의 알코올 의존도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4월 인제대 일산백병원 내과 홍재원·김동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중년 남성 3명 중 1명은 '고위험 음주군'이었다. 2009~2011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1만5천215명을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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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음주는 단순히 알코올 섭취량을 넘어 음주 빈도와 음주량, 음주 자제력, 남용과 의존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연구팀이 남녀의 연령대를 각각 19~44세, 45~64세, 65세 이상으로 나눠 고위험 음주율을 집계한 결과 45~64세 중년 남성의 28.3%가 고위험 음주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남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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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은 공격성을 부추긴다.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버펄로캠퍼스의 팔스 스튜어트 연구원은 272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음주를 했을 때 폭력행동의 위험성이 무려 11배 이상 높았다고 보고했다.

국내 학계 연구결과도 비슷하다. 여성가족부가 청주대학교에 의뢰한 '가정폭력과 음주의 상관관계분석을 통한 정책방안개발' 연구에 따르면, 음주문제가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을 놓고 유형별 폭력행동을 비교한 결과, 신체폭력, 상해 점수에서 음주집단의 폭력점수가 각각 46.4%, 61% 더 높았다.

박지영 심리칼럼니스트는 "40~50대 중년남성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할 경우 가장 손쉬운 도피처로 술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게 내재한 스트레스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폭력의 형태로 분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취감형'이 주폭 문제 가속화...가중 처벌 목소리도 커

지난해부터는 주취로 저지른 범죄가 무거울 경우 치료감호에 처할 수 있게 됐다. 주폭 범죄의 원인을 알코올 중독으로 보고 강제로 치료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미 영국, 호주 등지에서 활발하게 시행 중인 제도다.

경찰이 주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2012년에는 서울 백병원이 주폭 치료상담과 의료지원을 골자로 경찰과 협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폭 처벌이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법원에서 치료명령처분을 받는 주폭은 약 10% 안팎이다. 그 외에 치료명령처분을 받지 않은 90%의 경우에는 주폭을 강제로 치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실질적인 치료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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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폭 문제를 가속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는 '주취감형(酒 醉減刑)'이 꼽힌다. 형법 제10조 제2항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을 때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법원은 술에 취한 경우도 심신장애로 인정해 형을 줄여주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음주 폭행을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지난 2014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를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술을 마신 상태로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원래 받아야 할 형량을 2배로 늘리겠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한국의 음주 문화가 관대하다 보니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특히 현행법에서 심신미약일 경우 '반드시' 감경해야 한다는 명제를 '감경할 수 있다' 정도로 바꿔야 주폭 범죄 죄질에 따라 적절한 처벌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승 박사는 "프랑스는 음주로 인한 성폭력 및 폭력범죄를 가중처벌하고 있다"며 "독일과 스위스는 주취폭력에 대해 면제 혹은 감경없이 처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정예은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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