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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일본의 청년 파견작전… 시골서 나무 베고 연봉 46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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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농촌에 '젊은 피' 수혈, 日 지방 살리는 '지역부흥협력대'

지자체 1000곳서 5000여명 참여

3년간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며 주택 제공받고, 주 4일 근무

임기 끝나면 10명중 6명은 정착

지난 8일 일본 남부 고치현 사가와정(町) 지역의 깊은 숲속. 주황색 헬멧을 쓴 이리에 겐치로(35)씨가 전기톱으로 25m짜리 편백나무 베기 작업을 시작했다. "윙윙" 굉음이 진동하며 톱밥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무가 80%쯤 베어지자 구로이와 다이치(32)씨가 굴착기로 나무를 밀어 쓰러뜨렸다. 이들은 "숲속에 길을 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구용 나무를 수집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사가와정 소속 지역부흥협력대원들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9년부터 도시에 사는 20~40대 젊은이들을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지역부흥협력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은 "저출산·고령화로 인구와 노동력이 줄어든 농촌 지역에 '젊은 피'를 수혈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자기 고장에 필요한 농·임업이나 마을 특산품 개발 등의 사업에 모집 공고를 내면 도시 청년들이 지원하는 방식이다. 선발되면 3년 동안 그 지방에 내려가 임기제 공무원 자격으로 일하게 된다. 2009년 89명으로 시작해 올해 5000여 명으로 늘었다. 일본 전체 기초지방자치단체 1788곳 중 31곳에 불과했던 참여 지자체가 올해 1000여 곳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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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일본 남부 고치현 사가와정(町) 숲속에서 지역부흥협력대원들이 편백나무를 베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방도시와 시골에 20~40대 젊은이들을 파견하는 지역부흥협력대 프로그램을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동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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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대원들은 지자체가 제공한 주택에 살며 월급·활동비 등으로 연간 3600만~4600만원을 받는다. 월급은 중앙정부가 특별교부세 형태로 주기 때문에 지자체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도시의 일손을 유치할 수 있다. 협력대원들은 주 4일 근무하고, 쉬는 날에는 부업을 할 수도 있다. 히라이 다로 히로사키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낙후한 지방을 살리려는 정부와 일손이 부족한 지자체 모두 '윈윈'하는 셈"이라며 "협력대원이 늘면서 정부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지금은 지방 활성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본은 기초자치단체 1788곳 중 797곳(44.5%)이 '과소지역'으로 지정돼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다. 과소지역은 1980~2005년까지 25년간 인구가 17% 이상 감소해 생산 기반이 붕괴하는 등 활력이 급격히 줄어든 지역을 말한다. 도시 청년을 농촌으로 유인하는 이 프로그램도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교토의 한 은행에서 근무했던 구로이와씨는 "도시에서는 월급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았지만, 하루 15시간씩 주 6일이나 일하며 건강도 나빠졌고 삶의 활력도 떨어졌다"며 "이곳에선 내가 생각한 대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했다. 도쿄 출신 이치가와(33)씨는 협력대원으로 이곳에 내려왔다가 3년 후 이곳 공무원으로 눌러앉았다. 그는 "도시 생활이 버거운 나 같은 젊은이들에게 지방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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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은 도시 청년들을 반기고 있다. 이들이 와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사가와정 관계자는 "우리 고장에 내려온 임업 담당 협력대원 10명이 연간 2억5000만~3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주민 스키모토 나고무(77)씨도 "인구 1만3000명 중 절반(48%)이 노인인 이 마을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고 했다. 오카야마현 미마사키시는 협력대원들이 버려진 집을 카페와 마을 공동공간으로 개조해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었다. 수백 년 이어졌던 마을 전통춤 축제도 15년 만에 부활시켰다.

이렇게 지방으로 내려간 협력대원 10명 중 6명은 3년 임기 후 해당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총무성은 "올 3월 말 임기가 끝난 협력대원 2230명 중 1396명(63%)이 지역에 정착했다"고 밝혔다. 정착한 협력대원 중 절반 정도(53%)는 지역의 기업이나 상점에 취업했고, 26%는 임업이나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최대 100만엔까지 지원되는 보조금을 받고 창업한 사람들(9%)도 있다.

반면, 협력대원 생활을 마치자마자 지역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동북지역에서 일했던 한 협력대원은 "하루에 버스가 3대밖에 다니지 않아 갑갑했다"며 "시골의 평온한 생활만 동경하고 지원했다가 정착에 실패했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이 텃세를 부리거나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다기리 도쿠미 메이지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협력대원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게 과제"라고 했다.







[고치현(일본)=이동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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