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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사설] 韓이 美에 군사 옵션 포기하라면, 협상 카드 뭐가 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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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14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대 원칙'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1항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대통령이 동맹국인 미국을 겨냥해 북핵 군사 옵션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외교는 국가끼리 칼을 뒤에 숨긴 채 말로 하는 정치 행위다. 최후에 쓸 수 있는 '칼(군사적 옵션)'을 미리 포기한 채 상대의 선의(善意)에 매달리는 것은 항복과 같다. 동서(東西)의 역사가 증명한다. 북핵이 대화와 협상 같은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되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북한 집단이 외교적 해결을 끝내 거부할 경우 미국의 압도적 군사 조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압박을 느껴야만 한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은 미국을 향해 군사 옵션을 포기하라고 공개 요구한다. 미국이 군사 옵션 카드까지 버리면 북한이 무엇이 겁나 양보를 하겠나. 협상장에 나온다면 핵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대북 제재를 전면 해제하라고 할 것이다.

미국 정부가 군사적 검토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이다. 중국이란 구멍 때문에 제재와 압박은 한계가 있다. 시한은 3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군사 조치를 검토도 하지 않는다면 북을 압박할 아무런 카드가 없다. 대북 군사 공격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 옵션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아닌 북핵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동맹국인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마지막 남은 카드까지 버리라고 한다. 아예 두 손 들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표명한 '3불(不) 정책'은 모두 미국과 관련된 것이다. 동맹국인 미국으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두 달도 안 돼 한국은 다시 미국의 전략에 정면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북핵 사태가 어떻게 발전하든 관건은 한·미 동맹이 굳건한지 여부다. 이러다 어떤 사태를 만날지 알 수 없다. 미국으로서는 군사 옵션을 버리고 북한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북핵이 기정사실이 되더라도 미국까지 날아올 북 ICBM만 중단시키면 큰 피해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참사가 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그 방향으로 떠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대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고 하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중견 국가로서 그(중국) 꿈에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앞에서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는 것은 처음 듣는다. 우리는 국토는 크지 않지만 인구 5200만명에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육박하는 결코 작지 않은 나라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6국밖에 없다. 자기를 낮추고 중국을 높여서 중국의 협조를 얻겠다는 것은 중국을 모르는 것이다. 중국은 이웃을 아래로 보고 짓밟아온 나라다.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은 그런 중국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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