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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만물상] 與中野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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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간 13일은 난징 대학살 80주년 되는 날이었다. 문 대통령은 도착 직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애도한다"고 말한 데 이어, 15일에는 또 "이 사건에 깊은 동질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중국인을 대량 학살한 일제 만행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 역대 대통령들이 이에 대해 공식 언급을 자제했던 것은 대일(對日) 외교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난징 학살 행사장에 갔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역시 대일 외교를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도 아닌 문 대통령이 나섰다. 중국은 당장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라고 환영했다.

▶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한 14일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도쿄에서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났다. 홍 대표는 그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가 시 주석을 알현하려고 가는 날 (우리는) 일본에 왔다"고 했다. 제 나라 대통령이 외국을 정상 방문 중인데 야당 대표가 다른 나라에 가서 이렇게까지 심한 말을 해야 하는가 싶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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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달 초 중국에서 "중국몽(中國夢)이 세계 평화에 공헌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극찬했다. 홍 대표는 아베에게 "한·미·일 자유주의 핵 동맹을 맺어 북·중·러의 사회주의 핵 동맹에 대항하자"고 했다. 국익이 달린 외교에서 당이 다르면 이렇게 손잡는 나라도 달라야 하나. '여중야일'(與中野日·여당은 중국, 야당은 일본)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이스라엘도 내부 정치 투쟁이 치열하다. 앙숙인 리쿠드당(우파)과 노동당(좌파) 어느 쪽도 단독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해 줄곧 연정을 구성해왔다.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맺었던 라빈 총리가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됐을 정도로 강·온 대립도 살벌하다. 하지만 안보 위기가 닥치면 놀랍게도 한목소리를 낸다. 인구가 50배 많은 주변 아랍 국가를 상대하려면 그 길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이 큰 나라 틈에 있는 고로 언제든지 누구에게 의지하여 지내 버릇한 까닭에… 남의 나라 힘을 빌어 자기 나라 사람들을 서로 해하려 하는 일이 많이 생겼는지라. 국중(國中)에 청국당이 성하여 보았고 일본당도 있고 아라사(러시아)당도 있어 서로 싸우는 까닭에 소란한 일이 많이 생기는지라." 1897년 독립신문은 사설에서 이렇게 개탄했다. 그때 청나라·일본·러시아 영사관을 찾아다니며 굽신대고 우리끼리 헐뜯고 싸운 결과가 1910년의 국치(國恥)였음은 모두가 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끼리 싸움엔 귀신, 외적과 싸움엔 등신'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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