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48] We have nothing to lose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번엔 다릅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말이지요. 그들의 장밋빛 공약 중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단연 단골 메뉴이고요. 토니 블레어는 '이번엔 다르다'를 책임 있게 실천한 정치인이지요. "경제성장 없이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무력하다"고 외친 그가 재임 10년간 실업률을 낮춰 더 부강한 영국을 만들었으니까요.

청년 실업자가 25만명에 이르던 1998년, 블레어 총리가 영화 '풀 몬티(The Full Monty·사진)'에 나오는 한 직업소개소에서 연설합니다. "청년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건 정부가 할 일입니다. 우린 뭐든 다 할 것입니다(We do intend to go the full monty)." 그가 양복 상의를 획 벗어 던지며 그렇게 외치자 청중이 폭소합니다. 총리는 '풀 몬티'를 관람한 직후입니다. 상의를 벗어 던진 그의 행동이 뭘 뜻하기에 청중이 뜨겁게 반응한 걸까요.

이런 명구가 있습니다. 영화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실직자로 사는 것이다(The hardest work in the world is being out of work).' 무대는 모든 제철소가 문 닫은 영국 셰필드. 주인공은 가슴속이 하루도 먹구름 아닌 날이 없는 실직자들. 그들은 매일 직업소개소에서 줄을 서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하루는 여성 고객만 들이는 클럽 앞에 새까맣게 늘어선 줄을 목격합니다. 실직한 남자들의 어머니와 아내, 딸, 연인들이 스트립쇼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들어 만든 줄입니다.

아이들 양육비를 벌고 자신감도 되찾고 싶은 실직자 여섯 명이 스트립쇼에 도전합니다. 가관입니다. 몸도 외모도 볼품없는 오합지졸입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각오는 이것입니다. '우린 더 이상 잃을 게 없어(We have nothing to lose).' 딱 한 번만 펼칠 그들의 전라(全裸) 쇼는 성공할까요. 무대 조명이 켜지고 상의부터 착착 공중에 날아오릅니다.

♣ 바로잡습니다
▲16일자 A31면 '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We have nothing to lose' 기사 중 블레어 총리가 영화 풀 몬티에 나오는 직업소개소에서 연설한 해는 1988년이 아니라 1998년이므로 바로잡습니다.

[이미도 외화번역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