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이 사람] 아프리카 최고봉 29번 등정, 여행사 투어 리더 박장순씨
- 생계가 먼저였던 산악인
등반대장 되고 싶었지만 등반객 이끄는 직업 선택
- 힘 다할 때까지 올라야죠
킬리만자로는 뒷산 아냐
산과 삶은 도전해야 올라
그게 내가 배운 교훈
박장순 혜초여행사 이사는 해발 5895m 킬리만자로 정상을 29번 밟았다. 아마추어 등반객의 킬리만자로 등정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킬리만자로는 오를 때마다 새로워요. 함께 등반하는 사람이 늘 다르니까요.”/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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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순(53)씨는 해발 5895m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동네 뒷산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혜초여행사 이사 겸 투어 리더(등반 안내인)인 그는 아마추어 등반객을 이끌고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을 29번 밟았다. 내년 2월 30번째 등정을 앞두고 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현지인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박씨만큼 킬리만자로를 자주 등반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에 있는 여행사 사무실에서 만난 박씨는 "킬리만자로를 뒷산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만약 투어 리더가 아니었다면 킬리만자로는 딱 한 번만 올랐을 거예요. 킬리만자로는 자일 같은 전문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두 발로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이 산으로 꼽힙니다. 고소 증세도 심하고, 정상 부근은 체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지죠. 5박6일 산행 중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날은 매번 정말 힘들어요."
'다른 직원을 보내면 되지 왜 계속 오르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제 직업이니까 올랐지요. 지금은 사람들의 킬리만자로 등정 꿈을 이뤄주고 싶어서 오릅니다."
박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에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문 산악 동호회에 들어가 북한산 인수봉을 등반했다. 그는 "형제 없이 외아들로 자랐는데 산에 가면 형들이 많아 좋았다"고 했다. 태권도 관장인 아버지 뜻에 따라 용인대 태권도학과에 들어갔지만 "태권도장보다 산에 간 적이 더 많았다"고 했다.
박씨는 "산을 알고부터는 큰 산을 오르는 게 꿈이 됐다"고 했다. 한국인 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한 박영석 대장(2011년 안나푸르나에서 사망)과 같은 83학번 친구로 지내며 합동 등반을 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산악회 회원과 같이 국내 최초로 남미 파타고니아(3375m)에 올랐다. 하지만 박씨는 그해 여행사에 들어갔다. 그는 "등반대장이 되어 히말라야와 알프스를 오르며 이름을 떨치고 싶은 꿈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삶이 산보다 더 높았고, 먼저 올라야만 하는 곳이었다"고 했다.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정상에 선 박장순 이사./혜초여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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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처음에는 말레이시아 키나바루(4096m) 등 동남아 지역 산을 안내했다. 그러다 1996년부터 킬리만자로에 올랐다. 한 번 등반할 때마다 아마추어 등반객 15명을 인솔했는데 지금까지 총 400여명과 함께했다고 한다. 박씨는 "400번의 인생을 산 것 같다"고 했다. "산행은 보통 오후 4~5시에 끝나요. 다음 날 오전 6시에 다시 출발하는데, 그 사이 시간이 많으니까 사람들끼리 얘기를 많이 해요. 산에 오르면 솔직해지죠. 인생에 대해 배우는 게 많아요."
그에게 기억에 남는 등반객을 묻자 수십명의 사연이 쏟아졌다.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영감을 받아 표범 복장으로 정상까지 오른 50대가 있었어요. 체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는데 '초등학생 아들과 약속을 지키겠다'며 등정에 성공했죠. 60대 후반이었던 두 친구가 함께 등정하다 한 명이 고소 증세 때문에 하산하는데, 나머지 한 명이 '혼자만 정상 갈 수 없다'면서 같이 내려오기도 했고요."
박씨는 "15명 중 12명꼴로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한다"며 "체력보다는 의지의 차이 같다"고 했다. '누구와 약속을 지키겠다' '한계에 도전하겠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결의를 다지겠다' 등 뚜렷한 도전의식이 있을 때 정상에 오를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는 "산이든 삶이든 도전해야 오를 수 있다는 게 내가 킬리만자로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했다.
'언제까지 킬리만자로에 오르고 싶으냐'고 물었다. "제 체력이 다할 때까지요. 제가 모셨던 등반객 중에 60대 후반에서 70대도 많았어요. 그분들도 씩씩하게 올랐는데, 저도 그 나이 때까지 할 수 있겠죠."
[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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