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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가상통화 TF 회의' 미룬 정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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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규제는 가상화폐 제도권 편입 오해 우려

"전면금지는 비현실적"…고민 깊어지는 정부

세계파이낸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당초 15일 열기로 했던 ‘가상통화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다음주로 미뤘다. 이 자리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시장에서는 이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고민을 드러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면금지하자니 가상화폐 시장규모가 너무 커져버렸고 일정 수준 규제에 그치자니 자칫 정부가 가상화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이 2000만원을 오르내리는 등 네트워크 안에만 존재하는 가상화폐를 둘러싼 열풍이 고조되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비트코인은 안정적 가치저장 수단이 아니다”며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라고 비판했다. 스티븐 폴로즈 캐나다은행 총재도 “가상화폐 거래는 도박”이라고 규정했다.

한국 정부 역시 가상화폐 이상과열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일단 지난 13일 가상화폐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투자자보호와 거래투명성 확보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규제 취지를 밝혔다. 이대로라면 국내 3대 가상통화 거래소인 빗썸, 코인원, 코빗 등은 지금처럼 영업을 지속할 수 있다.

또 가상통화 거래세 등 과세 방안도 논의 중이다. 가상통화 거래세가 매겨지면 투기의 주목적인 시세차익이 감소하면서 투기 열기를 가라앉히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 거래는 결코 금융거래가 아니다”며 제도권 편입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규제를 하는 것 자체가 제도권 편입의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의 인가 기준을 정하고 세금까지 물린다는 것은 결국 가상화폐를 주식, 채권 등과 같은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며 “결국 미국과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가상화폐를 제도권에 편입시키고자 지난 10일(현지시간)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도 오는 17일(현지시간)부터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 가상화폐를 공식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며 “그런 오해조차 낳아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금지하는 것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를 유사수신행위로 간주해 전면금지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가상화폐 시장규모가 너무 커졌다. 이날 현재 비트코인의 전세계 시가총액은 319조8763억원으로 코스닥시장 규모(약 270조원)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비트코인캐시(32조3456억원), 리플(31조8390억원) 등 여타 가상화폐의 시장 규모도 수십조원에 달하고 있다.

매일 수백만명의 투자자들이 가상화폐를 거래하고 있으며 일일 거래량만 약 6조원에 이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가상화폐 열풍이 불면서 직장인뿐 아니라 주부, 학생 등도 가상화폐 투자에 나섰다”며 “만약 정부가 거래를 금지할 경우 이들이 불측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나아가 비트코인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정부에 거세게 항의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가상화폐는 국내에서만 거래되는 게 아니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국내에서 금지되더라도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거래하면 되는 것이기에 규제가 효과적일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지하자 중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일본 등의 거래소로 옮겨갔다”며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다른 블록체인업체 관계자는 “무리한 규제로 국내의 블록체인기술이 사장될 위험도 존재한다”며 “이는 4차 산업혁명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가 망설이는 사이 블록체인업계에서 먼저 자율규제에 나섰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는 이날 공동선언문과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협회 준비위에는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14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자율규제안에서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최소 자본규제를 20억원으로 정했다. 해킹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사에 준하는 수준의 보안능력도 갖출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모든 가상화폐 거래소는 투자자의 원화 예치금을 100% 제도권 금융기관에 보관해야 한다. 가상화폐의 70% 이상은 '콜드 스토리지', 즉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외부 저장장치에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투자자는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시스템을 통해 본인의 것으로 확인된 1개의 계좌로만 입출금할 수 있다. 이는 ‘검은 돈’의 유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행위, 시세 조종 등 불공정 거래 관련 임직원의 윤리 규정도 마련했다. 윤리 규정을 어기거나 시장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할 시 거래소나 거래소 임직원에게 제재가 가해진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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