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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서울을 배경으로 삶에 대한 사랑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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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거장 르 클레지오 '빛나-서울 하늘아래' 출간

매일경제

"서울이란 도시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상상력 풍부한 이야기가 많이 탄생하는 도시입니다. 굉장히 움직이는 도시이고 오래된 이야기뿐 아니라 오늘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대표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는 14일 서울 종로구 한국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 소설의 배경으로 서울을 선택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지한파(知韓派) 작가로도 유명한 그가 새롭게 내놓은 소설 '빛나-서울 하늘 아래'는 서울을 무대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0년 정도 서울을 자주 오가며 뭔가를 쓰고 싶었는데,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여행기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실제 들은 이야기가 이번 소설에 많이 녹아 있죠. 그중 하나는 경찰 출신의 남자가 어릴 때 38선을 넘어왔는데, 어머니가 비둘기 한 쌍을 데려왔고 세월이 흘러 이들이 고향인 북쪽 나라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고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소설에는 신촌, 충무로, 오류동, 서래마을, 남산 등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마치 한국 작가가 피부로 스며드는 작품을 쓴 것처럼 말이다. 평범하고 구체적인 지명으로 공간을 구성하다 보니 인물들도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주인공 빛나는 대학에 막 입학한 열아홉 살 소녀다. 고향은 전라도 어촌으로 거대한 도시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 시절 우리 곁에 있던 기숙사 룸메이트이거나 동아리 후배였을 것 같은 그런 소녀다.

빛나는 우연히 불치병을 앓는 여인 살로메를 만난다. 살로메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다. 시한부 인생을 맞이한 여인과 소녀가 만나는 설정은 낯설지 않지만, 빛나가 살로메에게 들려주는 얘기는 새가 하늘을 넘나드는 것 같은 상상력을 펼친다. 서울 하늘 아래에서 시골 소녀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모두 다섯 가지다. 액자소설 형태를 띠지만 우리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얘기들도 꾸미다 보니 실감 나게 읽힌다. 르 클레지오 작품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희망을 얻어내는 감각은 거장의 솜씨와 다름없다. 르 클레지오는 "빛나에게도 서울은 낯선 도시"라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상상해서 들려주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애정이 생기고 도시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번역한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학과 교수는 "르 클레지오가 처음 서울에 온 것은 2001년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이었다"면서 "늘 한결같은 사람이라 르 클레지오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뭐가 달라졌느냐고 물으니 달라진 것 없다고 했다"면서 "파리에 아파트를 사면서 진 은행 빚을 갚아서 좋았다고 할 만큼 소탈했다. 노벨상은 우연이지 현실이 아니라면서 그에게는 테이블, 종이, 컴퓨터가 전부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르 클레지오는 이날 영문판 'Bitna : Under the Sky of Seoul'도 함께 펴냈다. 외국 작가가 서울을 소재로 한글판과 영문판을 한꺼번에 펴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불문판은 내년 3월 프랑스에서 출간하며 스페인어 등 다른 외국어판도 순차적으로 펴낼 예정이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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