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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해외여행비 먹튀… '1등' 하나투어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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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에 사는 윤모(58)씨는 지난달 크리스마스에 두 딸과 크로아티아 여행을 가기 위해 동네에 있는 하나투어 전문판매점에 패키지 상품을 예약했다가 낭패를 봤다. 550여만원에 달하는 여행 대금을 판매점주 임모(35)씨에게 보냈는데, 임씨가 돈을 들고 도망을 간 것이다. 윤씨와 같은 피해자가 1000여 명에 이르고 피해액도 13억원이 넘었다. 하나투어 측은 지난달 15일 "법적으로 따지면 고객이 사기를 당한 것이지만, 고객 피해가 없도록 모두 책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씨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도망간 임씨가 윤씨로부터 돈을 받아 다른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에 예약을 했는데, 하나투어가 "우리 상품이 아니니 보상해줄 수 없다"며 거부한 것이다. 윤씨는 "업계 1위 업체라 믿고 예약을 했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고객의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믿었는데 두 번 사기를 당한 셈"이라며 "하나투어 간판을 달고 하나투어 명함을 들고 다니며 영업을 하는데, 몰래 다른 여행사 상품으로 계약한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했다.

검증 안 된 판매점··· "문제 일으켜도 퇴출 어려워"

대형 여행사의 판매점이 고객을 상대로 사기를 벌이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일에는 30명의 여행객으로부터 3억5000여만원을 가로챈 판매점주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지난달 부산에선 신혼부부 12쌍으로부터 여행경비 3500여만원을 받고 도망갔던 여행사 대표가 검거됐다. 지난해 대구에서는 고객 100여 명으로부터 해외여행 경비 1억6000여만원을 빼돌린 여행사 판매점주가 체포되기도 했다.

조선비즈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유명 여행사의 상품을 소규모 여행사가 대행해 판매하는 구조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명 '간판(간접판매)' 체제라 불린다. 업계 1·2위인 하나투어·모두투어가 모두 '간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하나투어의 경우, 하나투어 상품만 판매하는 전문판매점이 전국에 1200개, 다른 업체 상품도 함께 판매하는 일반판매점이 7000개다.

주요 여행업체가 간판 체제로 영업을 하는 판매점을 많이 확보할수록 고객을 모으기가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럽행 패키지 관광상품은 최소 25명 이상을 모집해야 여행사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상품을 만든 여행사 본사는 직접 판매만 하면 이 숫자를 채우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많은 판매점을 거느리고 있으면 모객이 쉬워진다. 대신 판매점은 대형 여행사의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쉽게 영업을 하고, 대신 9~10%의 수수료를 챙긴다.

하지만 판매점에 대한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13억원을 빼돌린 판매점주 임씨의 경우도 하나투어 상품만 판매해야 할 전문판매점 대표임에도 일부 피해자에게 다른 업체 상품을 팔았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다른 업체 여행상품을 팔았다고 해서 뾰족한 제재 방법은 없다"고 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사 본사가 판매점 대표의 자격이나 자본력을 검증하지 않고 우선 규모만 키우려고 했던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행사 본사의 책임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여행 사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비자가 판매점을 이용해 계약할 경우 돈을 받는 사람이 해당 여행사인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지나치게 저렴하게 판매되는 상품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론 판매점을 통한 대행 판매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기종 경희대 교수(관광정책학)는 "고객은 판매점이 아닌 본사의 브랜드 파워를 믿고 예약하는 것인데, 본사가 판매점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여행사가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등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하나투어는 "내년 4월부터 판매점의 명칭을 '지역예약센터'로 바꾸고 본사가 직접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은 뒤 판매점에 수수료를 후지급하는 방식으로 개선을 추진 중"이라며 "무엇보다 판매점주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상품교육 위주였던 교육 프로그램을 본사 직원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충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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