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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알아보니] 찬사 받는 ‘주35시간 근로제’가 신세계의 꼼수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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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10위권인 신세계그룹이 내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겠다고 지난 8일 밝혔습니다. 주 40시간인 법정근로시간 이하로 모든 임직원의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건 국내 대기업 중 최초의 시도입니다. 신세계는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임금은 삭감하지 않고 종전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언론에선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파격’ ‘주목’ ‘착한 실험’ 등의 수식어가 등장했고, ‘오너’인 정용진 부회장의 ‘결단’을 상찬하는 기사도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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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측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자는 게 주 35시간 근로제 도입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임금은 그대로 둔 건 우리도 선진국처럼 직원들에게 ‘휴식이 있는 삶’을 제공하겠다는 최고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내년부터 신세계그룹 직원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하루 7시간만 일하게 됩니다. 계열사마다 업무 특성에 따라 8시 출근 후 4시 퇴근, 10시 출근 후 6시 퇴근 등 7시간 근무는 유연하게 적용됩니다. 이마트의 경우 밤 12시인 폐점시간을 11시로 한시간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입니다. 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이 1800시간인데 한국은 2200시간이 넘습니다. 평균보다 70일 이상 더 일하는 셈입니다. 신세계의 35시간 근로제는 ‘과로국가’ 한국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저녁이 있는 삶’이 한층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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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세계의 발표 이후 유통업계에선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대부분 마트들이 연장근로수당을 통상임금처럼 지급하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연장근로수당도 줄어들 텐데 어떻게 임금이 깎이지 않을 수 있냐는 겁니다.

마트에서 계산과 판매, 진열을 담당하는 ‘중규직’(비정규직과 달리 무기계약을 하지만 급여와 복지 등은 정규직보다 낮게 책정되는 전문직) 노동자들은 더 나아가 신세계가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룹이 내세우는 거창한 취지와 달리 근로시간 단축의 진짜 목적은 인건비 절감이라는 겁니다.

이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대부분의 마트 계산원 등 중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많은 월급을 받습니다. 이마트의 경우 평균 월급이 145만원으로, 시급으로 계산하면 올해 최저임금인 6470원보다 약 500원 많은 6940원가량 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릴 계획입니다. 기존처럼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일하면 마트 노동자들은 2020년에는 월 209시간을 일하고 209만원의 월급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근로시간이 하루 7시간, 주당 35시간으로 줄면 최저임금 1만원을 적용해도 월급 183만원 이상을 받기가 힘들어집니다. 결과적으로 벌이가 줄어들고 최저임금 인상 혜택도 볼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들은 “이마트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교묘하게 피해가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같은 이마트 노동자라도 정규직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휴식권 보장이 필요하겠지만, 중규직들은 절대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신세계는 근로시간을 하루 1시간씩 줄이면서 추가 인력 고용 계획은 없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업무강도를 높이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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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국내 대형마트 3사에서 일하는 민주노총 산하 마트산업노조 조합원들은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세계 이마트의 주 35시간 근로제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기 위한 제도 변경을 노동자를 위한 결단처럼 포장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마트노조 롯데지부 이현숙 사무국장은 “신세계의 임금 삭감 없는 근무시간 단축은 현실과 다른 동화 속 이야기”라고 일축했습니다. 롯데마트에서 일하는 9500여명의 중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하루 7시간을 일하고 있습니다. 이 사무국장의 말입니다.

“7시간 근무를 하게 되면 교대조 동시 근무시간이 줄어듭니다. 고객이 붐비는 주요 업무시간 인력이 부족해지고 중간조가 늘어납니다. 인력 부족으로 연차나 휴무도 제대로 못 쓰고 몸은 골병이 듭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집안일이 있어도 사람이 부족해 동료끼리 휴무를 품앗이로 바꿔가며 포기하게 만드는 게 어떻게 일과 가정의 양립입니까.”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정미화 서울본부장은 회사와 진행 중인 단체교섭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우리의 핵심 요구는 현재 하루 5~7시간 일하는 계산대 직원들을 8시간 일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8시간 일하면 기본급이 135만원이 넘지만 7시간을 일하면 118만원을 겨우 받습니다. 기본급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상여금과 퇴직금도 차이가 벌어집니다. 7시간 일한다고 8시간 일할 때보다 노동강도가 덜한 것도 아닙니다. 결국 비슷하게 일하면서 월급만 줄어드는 겁니다. 이게 이마트가 말하는 근로시간 단축의 현실입니다.”

이들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기준으로 볼 때 근무시간이 35시간으로 줄면 이마트가 노동자 1명당 월 26만원, 연간 312만원의 임금을 아끼게 되는 셈이라며 이마트의 연간 인건비 절감 액수를 500억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이마트 영업이익(연결기준) 5469억원의 10%에 육박하는 금액입니다. 이마트에서 일하는 계산원 등 중규직 노동자는 모두 1만5000명에 이릅니다.

이마트는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인건비 절감액이 500억원이라는 마트노조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맞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마트 관계자는 “월급을 반드시 최저임금에 연동해서 정하는 것도 아니고, 근로시간을 줄여도 연장근무와 수당 지급이 예전처럼 이뤄지기 때문에 큰 틀에서 월급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일부 직원들을 제외하곤 5만8000명에 이르는 그룹 직원 대다수가 이번 제도 변화를 반기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결국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최저임금 1만원이 현실화되는 2020년에 가면 드러날 일입니다. 만약 이마트가 그때도 지금까지처럼 중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간신히 웃도는 월급을 지급한다면 ‘임금 삭감 없는 근무시간 단축’이라는 신세계의 홍보 문구는 ‘말장난’이 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근무시간 단축과 상관없이 중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매년 일정하게 올라 최저임금 상승분을 실질적으로 반영하게 된다면 마트노조의 주장은 ‘기우’였다는 평을 듣게 될 것입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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