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황석영 딸'보다 문학계 샛별로 빛나는 작가 황여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알제리의 유령들' 출간

"사랑이란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까지 안는 것"

연합뉴스

황여정 작가
[문학동네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의 딸이 가장 큰 출판사 중 한 곳에서 여는 문학상 공모에 작품을 냈다. 가명으로 친구의 이름 '김00'을 썼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간결하고 정제된 문장, 개연성 있는 이야기의 연쇄 혹은 세련되고 효율적인 구성"(소설가 은희경), "멋지게 짜인 완성도 높은 소설"(평론가 백지은), "세련되고, 영리하고, 아름다운 소설"(소설가 윤성희)이라며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들은 이후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김00'이라는 작가와 통화해보니 실은 황석영의 딸 황여정(43)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잠깐의 침묵 뒤 "아!"라며 탄성을 터뜨렸다고 한다.

지난 10월 말 황석영의 딸 황여정이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황석영의 소설을 한 번쯤은 읽어봤을 독자들은 이 작품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관심 속에 출간된 황여정의 장편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다 읽고 난 뒤 심사위원들의 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작가의 이름 앞에 '황석영의 딸'이라는 꼬리표 대신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차세대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한다.

크게 4부로 나뉜 연작소설 형식으로 1부에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을 쓴 연극인들의 딸과 아들 '율'과 '징'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그 사라진 희곡을 찾는 연출가 지망생 '철수', 율의 부모와 함께 연극판을 누빈 '오수'의 목소리로 옮겨가며 이 희곡과 율의 부모를 둘러싼 과거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합뉴스

황여정 작가 ⓒ정지현
[문학동네 제공]



여백이 많고 그만큼 여운이 남는 문장들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이야기의 향방을 종잡을 수 없게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일으킨다. 희곡의 존재를 좇는 중반부는 독자를 점점 몰입시키고, 희곡의 탄생에 '자본론'의 마르크스를 등장시켜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묻는 3부는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흥미롭다.

그 내막을 드러내며 아이러니한 농담처럼 역사가 할퀸 개인들의 비극을 보여주는 결말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1980년대 간첩조작사건과 고문, 탄압으로 점철된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의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상처를 돌아보는 내용의 이 소설은 개인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상처, 아픔과 유산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개인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역사의 장막을 들추며 끝나는 이 소설의 맥락은 실제로 1980년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아버지 황석영의 삶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황여정 작가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갈등이 내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화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저희 부모님 모습과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세대는 그런 역사를 스스로 겪은 세대이고 저는 그 기억 속에서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건 아니거든요. 이렇게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니라도 사회적 사건 때문에 내 인생이 영향을 받을 때, 어디서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와 개인적 존재로서의 내가 구별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고 갈등한 시절이 있었어요. 처음엔 거기서 도망가고 싶고 그저 '내 삶'을 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쉽지 않더군요. 나와 상관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아픈 사건을 보면 너무 아프고 잔인해서 모른 척하고 싶다가도 그게 어떻게 내 일이 아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부분이 글을 쓰는 데 계속 자극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소설을 "사랑 이야기"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뭘까, 도대체…' 그런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을 다 들여다봐야 가능한 일 아닐까 싶어요."

연합뉴스

황석영 작가
(서울=연합뉴스) 지난 6월 8일 서울 종로구 설가온에서 열린 자전 '수인'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6.8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소설 '깃발'의 홍희담 작가)도 사회운동가이자 소설가였던 덕에 그는 책에 둘러싸여 자랐고 열두 살 때 첫 소설을 썼다. 자연스럽게 스물네 살 때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많은 소설을 썼고 여러 공모전에 10여 차례 출품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돼서 소설 쓰기를 작파"했다가 2년 전에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게 됐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뭔가를 막 짜놓고 쓰는 편이었어요.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죠. 최종심에 올라간 소설이 몇 편 있었는데, 심사평 중에 '잘 썼는데 인물들을 너무 통제한다'는 평이 있었어요. 이번엔 공모에 내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다시 쓰고 싶은 맘이 드네, 신기하다, 어떻게 되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띄엄띄엄 이어갔죠. 그러다 공모 마감일 새벽에 완성했어요. 전날 괴로워하다가 포기하고 잤는데, 결말이라도 짓고 (공모에) 보내는 것까진 해보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장면을 썼죠."

그렇게 어렵게 당선된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당선 소식을 들은 지 두 달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이거 실화냐' 하며 혼자 웃는다"고 했다.

한국문학계의 큰 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는 뭐라고 했을까.

"당선 소식을 듣고서 아버지께 전했더니 당장 오라고, 같이 저녁 먹자고 하셨어요. 갔더니 긴말은 안 하시고 엄지손가락을 들며 '잘했다, 대단하다'고 하셨죠. 그러고 헤어져 집에 가려고 길을 건너는데, 아버지가 저편에 서서 보고 있다가 양팔을 치켜들며 '황여정 파이팅!'이라고 크게 외쳐서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였어요(웃음)."

그는 아버지에 관해 "가정적인 아버지는 아니었고 떠난 적도 많고 헤어져 있는 시간도 길었지만, 한 번씩 같이 놀러 갈 때 워낙 강렬했고 얘기를 나눌 때도 굉장히 꾸밈없고 허심탄회해서 늘 친밀감이 있었다"며 "일찌감치 헤어져서 그런지 애틋한 마음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작품 중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냐고 묻자 "모든 작품이 의미 있고 좋았는데, 특히 최신작인 '수인'을 봤을 때는 '와!, 이 분이 보통 분이 아니구나'라고 새삼 느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min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