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송년회 만취고객 퇴장시킬 제도 있었으면…"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7인의 하우스매니저가 말하는 연말 공연장 비매너 관객 백태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피아니스트 조성진 협연 무대. 1악장이 끝난 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한 객석에서 낭랑한 기계음이 정적을 깼다. 방금 연주가 끝난 라벨의 협주곡 1악장 뒷부분 멜로디가 휴대폰에 그대로 녹음된 소리였다. 일명 '녹음기 재생' 사건이다. 비단 이날 하루만의 문제가 아니다.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는 공연이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공연장에서는 숱하게 벨소리가 울린다. 하우스매니저들은 '비매너'와 전쟁을 치르느라 신음한다.

매일경제신문은 13일 연말 공연 시즌을 맞아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LG아트센터, 성남아트센터, 국립극장, 명동예술극장, 롯데콘서트홀 등 국내 대형 공연장 7곳의 하우스매니저들에게 '진상 관객' 백태를 물어봤다.

하우스매니저 7명은 가장 심각한 공연장 비매너에 대해 한목소리로 '휴대폰으로 인한 공연 관람 방해'를 꼽았다. 휴대폰으로 인한 관람 방해 사례는 다양하다. 공연 중 카톡 알림이 줄기차게 울려대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 촬영에 휴대폰 액정 불빛까지 모두 휴대폰을 끄지 않아 발생하는 비매너다. 명동예술극장 매니저는 "공연 중 타인의 휴대폰 사용으로 인한 민원이 가장 많이 접수된다"며 "너무 급한 연락이라 잠깐 시간만 확인해야지 하는 마음, 또는 작은 불빛이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다른 관객에게 가장 큰 방해가 된다"고 전했다.

하우스매니저들의 또 다른 말 못할 고충은 타인에게 너무 '엄격한' 관객들. 롯데콘서트홀 매니저는 "옆사람 숨소리가 거슬린다고 좌석을 바꿔달라는 관객의 요청에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성남아트센터 매니저도 "앞 좌석 관객의 키가 커서 시야 방해가 심각하다며 자리를 바꿔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고 했다. 예술의전당 매니저는 "클래식 공연장은 어쿠스틱 소리가 잘 전달되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보니 객석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도 크게, 멀리 퍼진다"며 "프로그램북 넘기는 소리, 허밍, 하품, 작은 속삭임, 겉옷 스치는 소리 등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는 점을 감안해 작은 행동에도 주변을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주의나 경고를 주면 되레 화를 내는 관객도 많다고 한다. LG아트센터 매니저는 "공연 중에 화장실을 다녀온 뒤 재입장하려는 관객을 제지했더니 그럴 거면 객석에 요강이라도 비치하라고 호통을 치시더라"고 했다. 성남아트센터 매니저 역시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왔는데 아이가 공연이 지루했는지 코를 골아 조심스럽게 주의를 줬더니 화를 내서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하우스매니저들은 한목소리로 대다수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보다 강경한 대응 방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국립극장 매니저는 "우리나라에도 공연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경우 가벼운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공연장 주변에 '휴대전화 사용 금지' 표지판이 의무화돼 있고 공연 도중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릴 경우 최대 50달러의 벌금을 내도록 법이 제정돼 있다. 성남아트센터 매니저는 "연말에는 특히 송년회나 회식에서 술을 드시고 오시는 분이 적지 않은데 만취하신 경우에는 퇴장시킬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해외 공연장에는 전파차단기를 설치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일본에서는 공연장에 들어가면 휴대전화가 저절로 '먹통'이 된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범 운용한 바 있다. 그러나 '통신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보통신부가 2003년 최종 불허 결정을 내리며 일단락됐다.

보다 나은 관람 환경을 위해 예술의전당은 다음달부터 대규모 관람 예절 캠페인을 벌인다. 롯데콘서트홀은 공연장 무료 체험 프로그램인 '롯데콘서트홀 프리뷰'를 통해 공연 관람 예절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7명의 하우스매니저들은 끝으로 이런 바람을 전했다. "제도를 도입해서 강제하는 것보다 관객 스스로 의식해서 모든 관객이 즐겁게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최고죠."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