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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더,오래] 뇌의 쾌락 탐닉에 혹사당하는 몸 ‘운동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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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욱의 심야병원(7)

운동 하다 보면 몸이 괴로워지는 시기와

뇌에선 통증 이겨내기 위한 엔돌핀 분비

몸은 망가지는 줄 모르고 운동 계속하게 돼

중독성 강한 운동, 골프·베드민턴·보디빌딩

오늘의 연주곡은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의 2악장이다. 이 곡은 브람스의 지독한 고독과 깊은 우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작곡가 그리그(Greig)는 브람스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안개와 구름으로 찢긴 풍경 속에서 폐허가 된 오래된 교회들이 보인다. 그것이 브람스다.“

연주는 레전드인 아이작스턴과 파블로 카잘스가 직접 연주한 현악 6중주로 들어보자. 특히 특히 카잘스는 13살 때인 1889년 바흐의 첼로 조곡을 발굴해 전 세계에 알린 주인공. 이곡을 연주한 것은 1953년으로 7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다.

“안녕하십니까.” 검게 그을린 50대 남자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몸에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 보여 누가 봐도 건강해 보이니만 왠지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제가 마라톤을 하는데요. 무릎이 아파서 뛸 수가 없어요. 그런데 다음 달에 또 대회가 있거든요.”

“무릎을 한번 볼까요.”

침대에 누운 남자분의 무릎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무릎이 많이 상해 이미 수명만큼 다 쓴 상태로, 70대 정도의 상태로 보였다. 이 정도면 어떤 치료를 해도 많이 좋아지지 않고, 인공관절 수술 정도만 남아 있을까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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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통증. [사진 인제대 상계백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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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많이 안 좋으시네요.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제가 풀코스를 2시간 30분대에 뛰거든요.”

“그런데 올해 제가 좀 무리를 해서 마라톤대회를 좀 많이 나갔더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보통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이 ‘서브 3’이라고 해서 세시간 안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분은 2시간 반에 완주를 한다니 거의 선수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병원은 안 가보셨어요? 병원에서 수술하라고 안 하던가요?”

이미 관절연골이 다 닳아버려서 수술하기 전에는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게…. 여기저기 가봤는데, 가는데 마다 수술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대회 일정이 밀려있어서 수술을 받을 수도 없고, 여기가 잘 고친다고 해서 소개받고 왔어요.”

지금 상태는 수술해야 할 정도의 심한 상태이고, 설령 수술이 잘 됐다 하더라도 앞으로 뛰기는 쉽지 않을 텐데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마라톤 대회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환자분 지금 무릎이 많이 상해 잘 고쳐도 다시 마라톤 완주를 하기는 쉽지 않으세요.”

“뭐라고요?” “그러면 안 돼요. 마라톤 안 하면 난 못살아요. 꼭 고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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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풀코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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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addiction)이다. 이 환자는 운동에 중독돼 있다. 이런 환자의 특징은 “마라톤을 너무 무리하게 해 무릎이 망가졌어요”라고 이야기해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치료를 하려면 일정 기간이라도 운동을 멈추거나 줄여야 하는데 그런 마음은 추호도 없다. 만약 치료를 해서 증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금세 다시 나가서 뛸 테니 재발 우려도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운동이 나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다른 중독들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이나 ‘도박중독’은 나에게 해가 된다고 인정하지만 못 끊는 것이고, 운동중독은 나에게 해가 되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엔돌핀은 일종의 마약 성분


중독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바로 뇌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달리기하다 보면 숨이 차고 몸이 괴로워지는 시기가 온다. 이 시기를 사점(死點)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뇌 안에서는 그 통증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기 엔돌핀이라는 물질을 분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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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이미지. [사진 UC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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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돌핀은 엔도(endo)+몰핀(morphine)의 줄임말로 몸에서 나오는 일종의 마약 성분이다. 이 순간을 ‘런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해서 통증도 없어지지만 뇌는 쾌락적으로 느끼게 된다. 뇌는 이러한 쾌락에 탐닉해서 엔돌핀을 계속해서 분비하게 하려고, 무리하게 달리기를 계속하도록 지시하고, 결국 본인의 관절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뛰게 되는 것이다.

좀 더 강한 자극을 위해서 마라톤을 하던 사람들은 철인삼종경기, 사막 마라톤으로 좀 더 가한 자극을 찾게 된다. 중독성이 강한 운동으로는 골프, 배드민턴, 보디빌딩 등이 있다.

필리핀에 가서 매일 36홀씩 3주를 안 쉬고 치신 끝에 팔꿈치가 완전히 망가져 오신 70대 할머니에게 “팔꿈치가 너무 많이 다쳐서 골프를 안 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니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 고 한 분도 있었고, 어깨 힘줄이 끊어져서 수술받고 바로 다시 역기 들다가 끊어진 환자도 있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이 운동이 너무 좋아져서 집에 가도 생각이 난다” 하는 분들은 내가 운동 중독이 아닌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유재욱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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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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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 몸에는 안 좋다” 술, 담배, 도박, 마약 등은 명백하게 뇌에는 쾌락적이지만 몸에는 해롭다. 그렇지만 뇌는 자기에게 쾌락적이라면 그것이 몸에 해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교묘하게 합리화한다.

캐나다 철학자 에크하르트 톨레는 자신의 저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원제 ; ‘The Power of Now')에서 어떻게 내 몸의 주인이 되는지 이야기한다.

우리 몸의 주인은 ‘내 몸’임이 분명한데, ‘뇌’가 주인행세를 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데, ‘정부’가 자기가 주인 인양 착각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뇌가 주인행세를 해서 자기 맘대로 내 몸을 해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artsm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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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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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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