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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운전기사에 “씨X, X같네” 한국인정지원센터장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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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사가 센터 차량 구매조건 묻자

말대꾸 한다고 욕설 뒤 직무정지

컴퓨터·아이디 회수하고 독방 배정

23년 경력 운전사에 연구시키기도

“연구 맡긴 건 교육훈련용” 해명에

노동전문가 “100% 부당인사” 비판


한겨레

직장갑질 119가 마련한 직장갑질 피해자의 모임 ‘가면무도회’에 참가자들이 쓴 가면들이 놓여있다. 가면엔 ‘갑질NO’, ‘울지도 몰라’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직장갑질 119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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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인정지원센터에서 23년간 운전기사로 일해온 최아무개(57)씨는 2개월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센터장과 틀어진 사건이 발생한 ‘그 날’ 이후 최씨에게 회사 생활은 악몽이었다.

발단은 지난 9월20일에 벌어졌다. 최씨가 센터에서 구입할 차량의 가격을 비교해 보고하자 이 기관의 김아무개 센터장은 차량의 금액을 정확히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최씨가 차량을 구매할지, 빌릴지, 할부로 할지 등 조건이 정해져야 정확한 금액이 알 수 있다고 되물었다. 이에 센터장은 “왜 자꾸 변명을 하냐. 이러니 평가 점수가 낮다. 이번에도 최하 평가를 받으면 어쩌려는 거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길래 ‘활 쏘는 사람한테 유도장에 가서 메달을 따오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반발하자, 센터장이 ‘씨X, X같네’라고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장은 최씨의 자동차 열쇠를 빼앗고 ‘너보다 운전 잘하는 사람 뽑아서 다닐테니 집에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말대꾸 뒤 최씨는 인사 보복에 시달려 왔다. 우선 사건 바로 다음날 직무정지를 당했다. 사내 통신망에 접속할 수 없었고 컴퓨터도 회수됐다. 일반직 신분인 최씨는 운전 말고도 매출액을 집계하는 가욋일도 2년째 해오던 상태였다. 직무정지 상황에서도 최씨가 계속 출근하자 인사 담당자는 출입증을 반납하라고 독촉했다. 최씨는 “센터장이 ‘불쌍한 사람 도와준다 생각하고 월급은 줄 테니 집에 있다가 내가 떠나거든(임기가 끝나거든) 그때 나오라’고 말했다”며 “급여를 계속 준다는 걸 문서로 남겨달라고 했더니 그건 또 안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직무정지를 당한지 6일 만에 최씨는 ‘인증사업 신뢰성 향상 방안’이라는 연구를 지시받았다. 20여년 동안 운전만 해온 최씨에게 재교육도 없이 맡겨진 일이었다. 더구나 최씨는 연구 보고서를 매일 사내통신에 게시하라는 명령까지 받았다. 센터장은 보고서의 가치를 스스로 금액으로 평가하라는 지시도 덧붙였다. 최씨는 다른 직원들과 격리된 1인 독방에 배치됐다.

센터장은 최씨가 작성한 보고서에 일일이 첨삭을 하기도 했다. 센터장은 최씨의 보고서에 “생각은 집에 가서 직장에선 일을 해라”, “글씨체 확대하지 마라”, “하나마나한 이야기 하지마라” 등 지적을 남겼다. 총평으로는 “길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나눠주고 회수한 설문조사 용지에 하고싶은 말만 적혀있는 내용 같다. 1만원 주기도 아까운 정도”라고 썼다.

2주 뒤 최씨는 전무 차량 운전기사로 다시 인사 발령을 받았다. 한달새 직무정지, 단독연구, 전무이사 차량 운전까지 벌써 세번째 인사조치였다. 센터장은 최씨에게 가혹한 것 아니냔 이야기가 돌자, 10월18일과 19일 사내통신에 글을 올려 “인정센터(KAB)는 능력없는 사람에게 일감주고 봉급주는 자선단체가 아니잖습니까?” 등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참다 못한 최씨는 지난 10월31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그러자 센터장은 11월8일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사과합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사과 문자를 받은 다음날인 11월9일, 최씨는 다시 차량도 없는 충북 음성 본사에 ‘차량운행 및 업무지원’ 명목으로 또 인사가 났다. 최씨가 23년간 운전하던 센터장 운전기사 자리엔 11월6일자로 채용된 1년짜리 계약직 직원으로 대체됐다. 최씨는 “힘없는 직원을 뺑뺑이 돌리는 건 사실상 나가라는 뜻 아니냐”며 “대학생 자녀가 둘이나 있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면서도 그만두지도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장은 “하극상 한 부분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업무 개선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단독연구라는 교육훈련 기회를 준 것”이라며 “별로 효과가 없어서 전무 차량운행을 맡겼지만 규정에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있어서 재차 인사를 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욕설을 한 것에 대해서는 혼잣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가 당한 일은 자진 퇴사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부당노동행위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운전기사에게 연구를 맡겼다는 건 100% 부당 인사”라며 “병원 원무과 직원한테 수술을 맡기고 왜 사람을 살려내지 못하냐며 저성과자로 낙인 찍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최씨의 진정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인권위는 “기본권 침해적 요소가 있어 보인다”며 “올해 안에 현장을 찾아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정지원센터는 품질인증기관의 인증 신뢰성을 따져 ‘인정’해주는 업무를 하는 곳으로 국가기술표준원의 감독을 받는 재단법인이다. 김 센터장은 과학기술부에서 30여년 동안 근무한 공무원 출신이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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