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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선거·대형사건 때마다 '가짜뉴스'…풍문에 묻히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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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정보에 흔들리는 사회/문재인 대통령 금괴 악성 루머 대표적/세월호 참사·광우병 사태 때도 뒤흔들어/정부, 중대사안 미심쩍은 정보도 한몫/SNS서 괴담·유언비어 급속도로 퍼져/1%가 왜곡한 정보에 국민 90% 현혹/경제적 피해 추정금액도 30조원 달해

세계일보

광우병 사태과 세월호 참사,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9대 대통령 선거.

최근 10년 사이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 같은 사건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가짜뉴스’가 등장했다. 때로는 교묘했고 어떨 때는 황당했지만, 거리낌없이 나돌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진실로 믿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한 뒤 포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거짓 정보의 생산·유통이 더욱 활발해져 사회 혼란과 공포,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금괴 도굴범 문재인을 구속하라”… 거짓 정보가 만든 슬픈 자화상

괴담이나 유언비어, 가짜뉴스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거짓 정보는 사안이 중대하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정보가 신뢰를 얻지 못할수록 파괴력을 커진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앨포트와 레오 포스트맨은 이를 ‘루머는 중요성(Importance)×모호성(Ambiguity)에 비례한다’고 정리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안이 중대하고 불확실성이 클 때 거짓 정보가 기승을 부렸다. 여야 혹은 주요 후보 간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 총선 혹은 대선 등 주요 선거에선 어김 없이 거짓 정보가 범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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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다녔던 금괴 관련 악성 루머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일제가 버리고 간 금괴 1000t을 몰래 보유하고 있다는 루머였다. 이 허무맹랑한 소문은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졌고 일부 시민은 사실로 믿었다. 급기야 2015년 12월 30일 한 50대 남성이 흉기와 시너를 들고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 대통령의 부산 사상구 사무실에 난입해 “금괴사건 도굴범인 문재인을 즉각 구속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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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유력 대권주자로 꼽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유엔에서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기사가 한 인터넷매체를 통해 보도됐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또 지난 대선 투표에 즈음해선 투표용지가 두 종류라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중대 사안에 대해 신뢰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여기에 언론이 정부 발표를 검증 없이 보도하는 ‘불통 상황’에서 거짓 정보는 더욱 난무한다. 사람들이 자구책을 모색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빠질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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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유해성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시장 완전개방 협상을 서둘러 매듭지어 버렸다. 불안한 시민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로 미국산 쇠고기를 검증하기 시작했고 괴담으로 이어졌다. ‘광우병이 호흡으로도 전파된다’, ‘화장용 수분젤을 바르거나 라면만 먹어도 감염될 수 있다’는 등의 비상식적인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뒤늦게 정부는 광우병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지만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광우병과 같은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 언론에 의한 여론 무시와 통제는 정치체계 신뢰를 상실케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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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왜곡한 정보가 90%를 현혹한다

오늘날 거짓 정보는 SNS와 특정 정치성향이 강한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생산돼 급속히 확산되는 특징을 가진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이 일상화해 ‘손가락질’ 몇 번으로 문서, 동영상 등의 생산·유통이 가능해진 때문이다.

일단 한 명이 거짓 정보를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면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인터넷 사이트나 지인들에게 전달하고, 일부 매체나 유명인이 이를 언급하면 확산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해당 정보의 공유가 많아지면 사실처럼 굳어져 나돌게 된다. 1%가 정보를 창출하고 9%가 이를 재전송하며 90%는 정보를 접한다는 ‘1:9:90의 법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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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 합성한 가짜뉴스.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캡쳐


지난해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에는 북한 노동신문을 합성한 가짜뉴스가 떠돌기도 했다. 즉 광화문 촛불집회가 김정은의 지령을 받고 있다는 거였다. 이 가짜뉴스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졌고, 여기에 극우 성향을 띤 인터넷 매체들이 일제히 사실인 양 보도하면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선입견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탐색하려는 이른바 ‘확증편향’까지 작동하면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촛불집회는 김정은 지령에 따른 것’이라는 정보를 절대적으로 믿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가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일이 벌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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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 명이 아닌 집단이 적극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정보를 확산하는 새로운 경향도 나타난다. 한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서는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네이버 포털을 중심으로 이들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유리하게끔 댓글을 달면서 여론을 움직이려는 이른바 ‘N프로젝트’를 실행하기도 했다.

거짓 정보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거짓 정보를 인한 경제적 피해 추정금액은 30조900억원에 달한다. 이외에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오는 간접적인 피해 역시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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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에 說만 난무… 소통 다각화 급선무

“나라 안팎의 크고 작은 문서를 긴요하고 중대하지 않은 것까지 대부분 비밀히 출납하므로 밖에서 보기에 단서를 알지 못해 더욱 스스로 의혹하게 하니 민심이 동요되는 것이 반드시 이에 말미암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의 선조대 기록 중 일부다. 백성의 풍속 관리와 관료 감찰 등을 담당하는 사헌부에서 올린 내용인데 유언비어의 원인을 ‘정보의 불통’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조선은 이런 진단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최초 유포자를 찾아 처벌하는 데 급급했다. 그래서 풍문(風聞), 흉언(凶言) 등으로 불린 거짓 정보가 끊임없었다.

수백년 전 조선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거짓 정보에 대응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즉 거짓 정보가 활개치는 걸 막기 위해선 정부가 소통 창구를 보다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독점하다시피 한 정보에 대해선 국민들의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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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정부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정보공개 청구밖에 없다시피 하고, 이마저도 관료들의 편의주의로 쉽게 묵살된다”며 “이는 정책 입안, 집행 등의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는 걸 불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공공기관의 정보 투명성을 지금보다 높이는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책을 시행하기 앞서 정보공개의 시점이나 방향, 범위 등을 고지하는 걸 의무화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같은 조치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커져야 거짓 정보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시민들의 검증 책임도 크다. 구 교수는 “언론은 속보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사실을 검증하고 심층적으로 취재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며 “국가가 직접적으로 거짓 정보 유포자를 색출하기보다 시민들이 쉽게 유포자를 고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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