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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5년 만에 드러난 경찰의 ‘수사기밀 유출’… 김용판 전 청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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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2년 12월15일 국정원 김하영씨 정치개입 글 발견되자

분석팀 이날 낮 ‘키워드 축소’ 뒤 새롭게 증거분석

“김 서장이 키워드 축소 주장” 진술 새롭게 나와

‘윗선’ 김용판 전 청장 수사확대에는 신중



한겨레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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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찬 서울 용산경찰서장이 국가정보원에 수사 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당시 ‘윗선’이었던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재수사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이번 검찰 수사로 경찰의 국정원 수사 축소·은폐 의혹에 대한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갔지만, 검찰은 김 전 청장의 경우 현재 뚜렷한 추가 증거가 나온 게 없다고 보고 수사확대에 신중한 모습이다.

4년 전 수사결과와 뭐가 달라졌나?

이번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 수사를 통해 새로 드러난 핵심 내용은 2012년 12월15일 경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축소·은폐에 관한 구체적 상황이다. 이날 낮 12시30분~1시께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 임아무개씨가 ‘박근혜·문재인·민주통합당·새누리당’ 등 키워드 4개가 담긴 메모지를 분석관들에게 전달하면서 수사팀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울청은 이틀 전 수서경찰서로부터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분석 작업을 의뢰받아 분석에 착수한 상태였다. 다음날인 12월14일 분석팀은 김씨의 노트북에서 ‘메모장 파일’ 1개를 발견했고, 그가 아이디·닉네임 40개를 활용해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오늘의 유머’ 등 사이트에서 집중적으로 정치개입 글을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날 분석관들이 메모지를 받은 뒤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 직후 분석팀은 김씨의 정치개입 글 등 기존 검색 내용이 들어있는 ‘케이스 파일’을 지우고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 사실상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을 은폐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분석팀은 그 뒤부터 4개의 키워드와 40개의 아이디·닉네임만 국한해 노트북과 데스크톱 안에 있는 내용을 검색했고, 여기에서 정치개입 글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의 ‘분석 키워드 축소’가 중요한 이유는 어떤 키워드를 넣느냐에 따라서 검색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건 실체 확인을 위해서는 애초 수서서가 의뢰한 100개의 키워드를 이용하고, 이를 토대로 수사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정작 정치개입 ‘단서’가 나오자 수사 범위를 갑자기 축소한 것이다.

이는 국정원 ‘내부 지침’과도 관련이 있었다. 검찰이 압수한 2012년 10월 작성된 국정원 문건에는 대선이 다가오는 만큼 보안이 중요하다며 트위터 계정을 모두 삭제하고, 노골적인 글은 올리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김하영씨가 경찰에 컴퓨터를 임의제출할 당시 국정원이 경찰에 ‘지난 10월 이후 3개월 동안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글에 대해서만 확인해달라’고 요청을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이미 대비를 한 내용에 대해서만 수사하라고 한 것을, 경찰이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김용판 전 청장 재수사 피해가나?

2013년 기소됐던 김용판 전 청장 재판에서도 키워드 축소는 핵심 쟁점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분석관들이 자체회의를 통해 키워드를 축소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법원은 이런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효율적인 분석을 위해 서울청이 수서서에 키워드 축소를 요구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전 청장은 2015년 1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 서울청 관계자들과 분석관들을 재조사해 김 서장이 키워드를 축소를 주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한된 분석결과가 반영된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되도록 상황을 주도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서울청을 출입하던 국정원 직원 안아무개씨로부터 “빨리 결론을 내달라”는 부탁을 받은 김 서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신속하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 위해 키워드를 축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서장은 2012년 12월16일 ‘국정원 선거개입 없다’는 내용의 경찰 발표 보도자료를 미리 국정원 직원에게 넘긴 혐의 등으로 지난 11일 불구속 기소됐다.

김 서장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당연히 관심은 ‘윗선’인 김 전 청장으로 쏠렸다. 김 전 청장이 김 서장과 공모해 국정원 쪽에 수사기밀을 유출했다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김 전 청장에 대한 공소시효도 김 서장의 수사기밀 유출 사건의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된다. 검찰이 김 전 청장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셈이지만, 김 전 청장이 직권남용 혐의 등과 관련해 무죄를 확정받은 만큼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같은 혐의로는 기소할 수 없다. 다만 수사 중에 국정원과 공모한 사실이 드러나면 국정원법 위반을 적용해 추가기소를 할 수는 있다.

“억울하다”는 김 서장, 국정원 직원과 ‘수사’때만 통화

결국 윗선으로 수사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김 서장과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 등의 진술이 중요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서장의 경우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조차 대부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서장은 기소 뒤 기자들에게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다 누명이며, 기밀을 유출했다는 것을 부인한다”는 입장문을 보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서장이 국정원 직원 안씨와 2012년 12월12일부터 이듬해 6월까지 총 58차례(음성통화 29회) 연락을 한 사실을 파악했다. 김 서장은 “통화 시도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통신사 확인 결과 모두 실제로 연결된 통화내역만 반영된 것이며, 특히 김하영씨 사건 발생일인 12월11일부터 경찰 중간수사결과 발표일인 12월16일 사이에 통화의 80%가 집중됐다”고 밝혔다.

더구나 김 서장은 국정원에 면죄부를 주는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부터는 이듬해 2월까지 국정원 직원과 단 두 차례만 통화했다고 한다. 이 역시 수서경찰서가 김하영씨가 활동했던 인터넷 사이트인 ‘오늘의 유머’와 ‘보배드림’의 서버를 압수수색할 때여서, 검찰은 당시 통화도 수사 상황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그사이 다시 통화가 없다가 이듬해 3월8일 경찰이 국정원 외부조력자 이정복씨에 대한 계좌추적 등에 들어가자 또다시 길게 통화를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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