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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여배우·여혐…여성, 올 한 해 영화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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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1. 남성 셋이 테이블 위 저항 불능 상태의 여성을 희롱하고 학대한다. 무리와 떨어져 이 광경을 지켜보던 또 다른 남성이 여성에게 다가와 목을 졸라 숨통을 끊는다. 영화 ‘브이아이피’는 흥행 실패의 요인으로 ‘여혐’(여성 혐오) 논란이 주요하게 언급됐다.

#2. “한국영화 죄다 조폭 아니면 형사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주인공 문소리가 지인들에게 ‘작품이 없다’고 푸념하자 그 중 한 명이 영화계 현실을 비틀어 한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데도 이 대사는 업계에 일침을 날렸다.

여성이 올 한 해 영화계의 화두였다. 여배우의 척박한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것에 더해서 여혐 논란에, 촬영 현장 성폭력 사건에, 페미니즘 논쟁까지 젠더(성) 이슈가 1년 내내 이어졌다.

전문가는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젠더 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서라고 말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활동이 활발해져서 성차별이 없어진 것처럼 보지만 사회에서의 성차별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달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Global Gender Gap Report 2017)에 따르면 한국은 성 격차 지수가 0.650으로 조사 대상 144개국 중 118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윤 평론가는 “현대의 가정이 여아를 남아와 똑같이 보호하고 대우하고 키우더라도 사회의 인식은 가정의 변화 속도를 좇아가지 못한다. 어떤 측면에선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폭력에 대해서 여성이 과거보다 더 크게 괴리감과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여성 각자가 사회에서 경험한 개인적 경험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일들과 맞물려 근래의 젠더 이슈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젠더는 영화계뿐 아니라 올해 사회적 전반의 키워드로 대중적인 문화인 영화에서 부각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올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 영화들은 태반이 남성적 장르의 범죄물 또는 형사물이거나 남배우 위주의 멀티캐스팅 영화였다. 10위권에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이 캔 스피크’ 단 한 편이었다. 이 가운데 5위에 랭크된 ‘청년경찰’은 흥행에 성공을 했지만 ‘브이아이피’와 함께 여혐 논란에 휩싸였던 작품이다. 이들 영화에서 여성은 주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고, 남성의 서사를 위한 도구(조력자나 희생자)로만 이용된 점이 지적됐다.

올해 젠더에 대한 담론이 더 활발해진 건 달라진 시대적 분위기와도 관련 없지 않다는 의견이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보수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들어선 후 광장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기존의 사회(병폐)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다른 여러 가지 이즘과 함께 하나의 대안, 해결 방안으로 부상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봤으며, 윤 평론가는 “사회문화전반에 있어서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인 점도 젠더 평등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하나의 배경이다”고 말했다.

유아인의 ‘애호박’ 발언에서 출발한 페미니즘 논쟁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호박으로 맞아볼래?”라는 그의 표현은 여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진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그의 고백은 ‘그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에 대한 설전을 낳았고, 여기에 평단 및 언론까지 의견을 개진하며 ‘페미니즘은 무엇인지’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남녀 간의 대결로 편을 갈라 접근하고, 상대에 대한 비방과 욕설을 쏟아내는 무리들도 있었지만, 젠더 또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 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할 것이다. 직장인 여성 박모(30대 초)씨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누군가는 남녀의 평등을 말하고 또 누군가는 남녀의 평등은 기본이고 (페미니즘은) 거기에서 더 나아간 것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과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 평론가는 “지난 1년간 영화계에서 불거진 젠더에 관련된 이슈는 그것에 대한 사회적 오독으로 비롯된 부작용일 수 있다”며 “이제 한국사회에서도 젠더 문제나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짚고 가야 할 시점이 됐다. 유아인 현상을 비롯한 일들이 그것을 테이블 위로 올려 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윤 평론가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옳든 그르든 이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필요하다’는 반증이다”며 “그것이 향후 영화계나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의미를 뒀다.

이를 위해서는 젠더 이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젠더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더불어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언론본부 정슬아 사무국장은 “자신이 소중한 만큼 누군가가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단순히 싸움, 자극적인 얘깃거리로만 소비하지 않고 공동체 문제로,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의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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