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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밀착취재] 추모와 혐오 사이에 선 동물장묘시설…깊어지는 갈등의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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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1000만 시대… 전국 곳곳서 뜨거운 논쟁 / 전국 등록 24곳 중 경기 10곳 최다 / 2014년 이후 17곳 신설… 급속 증가 / 지역 주민들 “생활 정서·환경 해쳐” / 지자체, 민원의식 불수리·반려 처분 / 업체 행정소송 맞서 법정다툼 확산 / “명확한 규제 기준·사회적 합의 필요”

세계일보

반려동물 인구 1000만시대를 맞아 ‘펫펨족(pet+family)’을 위한 동물장묘시설 건립사업이 잇따르면서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동물장묘시설은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식장과 화장장, 납골당 등을 일컫는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사체는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의료폐기물로 분류돼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동물보호법상 동물 장묘업체에 의해 화장처리해야 한다. 지난해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장묘업 시장 진입을 완화해 동물장례시설에서 화장 등 방식으로 처리하도록 했으나 그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역 주민들은 동물장묘시설을 생활정서와 환경을 해치는 혐오시설로 인식한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민원 등을 의식해 ‘불수리’와 ‘반려처분’을 내리기 일쑤다. 이에 업체는 행정소송 등으로 맞서면서 법정다툼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물 사체의 인도주의적 처리와 동물장묘문화 개선의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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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한 동물장례식장 관계자가 반려동물 추모관에서 반려견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김동욱 기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동물장묘시설

동물장묘시설은 최근 3∼4년 새 급격히 늘어났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전국 동물장묘업체는 현재 모두 24곳이다. 2008년 경기 군포시와 광주시에 각각 3곳, 1곳이 등록한 이후 매년 한두곳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중 17곳(70.8%)이 2014년 이후 생겼다.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0곳으로 가장 많다. 반려동물이 28만여마리에 달하는 데다 인접한 서울은 대기환경보전법과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동물장묘시설이 아예 들어설 수 없어 수요가 경기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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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장례는 사람과 비슷한 절차로 진행한다. 반려동물이 죽으면 운구차가 집으로 찾아가 운반하기도 한다. 장례식장으로 이송된 사체는 염을 하고 수의를 입혀 입관하는 등 절차를 거쳐 화장을 통해 납골함에 보관한다. 더러는 수목장을 치르거나 분골한 유골을 산이나 강에 뿌리기도 한다. 처리비용은 18만∼20만원 선이지만 장례방식과 물품에 따라 100만원을 넘기도 한다.

지난해는 한국동물장례협회가 창립했고, 위생적인 동물 사체 처리와 장례절차를 전문으로 진행하는 장례지도사 민간자격도 등장했다. 아직은 동물장묘시설을 통해 처리되는 반려동물 사체는 많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동물장묘업체에서 처리하는 동물 사체는 3만1000여마리로 매년 질병이나 수명을 다해 죽는 반려동물 54만마리의 5.8%에 불과하다. 동물 사체를 개인이 임의로 매장하거나 무단투기하는 것은 불법으로 1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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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한 동물장례식장 관계자가 반려동물 추모관에서 반려견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김동욱 기자


◆지자체마다 잡음, 결국 법정으로

현재까지 광역지자체 행정심판이나 1심 재판부는 동물장묘시설이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에 문제가 없다면 허가해야 한다며 업체 측 손을 들어주고 있다.

대구 서구는 지난 3월 동물장례업 관련 업자가 상리동에 동물장묘시설을 건립하겠다며 신청한 건축허가를 불허했다. 인근에 하수처리장과 음식물쓰레기처리장에 이어 동물화장시설까지 들어서는 것은 부당하다며 주민 1000여명이 반대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거센 반대여론을 의식한 때문이다. 그러자 업자는 대구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구청은 지난달 항소했다. 대구지역 반려동물은 5만5000마리에 달하지만 장례시설만 있고 동물화장장은 없다.

최근 5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동물화장장 건립을 추진하고 나선 김해시에서는 이 중 3곳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에 업자들은 경남도 행정심판을 통해 처분이 부당하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나머지 2곳은 사업 검토 중이거나 허가가 났지만 주민 반발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김해시는 무분별한 화장시설 확산을 막기 위해 반려동물 공설 화장장 건립을 검토하고 나섰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청은 동물장묘시설 개발행위를 불허가했다가 업자가 낸 처분 취소소송에서 지난 9월 패소했다. 파주시도 한 애완동물 장묘업체가 신청한 동물장묘업에 대해 잇따라 등록 불가 처분을 내렸다가 행정심판과 법정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경남 창원시는 지난해 초 진해화장장 부지에 동물화장시설을 포함한 반려동물 테마공원을 조성하려다 주민 반발 등에 부딪혀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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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경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동물장묘공원 예정지 인근 도로 위에 동물화장장을 반대하는 마을주민들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 현수막 위에 1억3000만원 규모의 후원금을 내고도 반대여론에 직면한 장묘업체가 마을주민들의 이중적 행태를 비난하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내걸어 묘한 대조를 보인다. R사 제공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양평군에서는 한 업체가 일대 마을 이장들에게 마을발전기금으로 5억원을 내놨는데 사업반대 민원을 제기해 불허가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북 전주에서는 최근 도시 외곽지역에 건립을 추진하고 나서 도시계획심의위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물복지·반려인 위한 사회적 합의부터

지자체들은 법 규정과 판결, 주민 반발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현행법상 동물장묘시설은 허가가 아닌 등록사항이어서 일정 요건만 갖추면 규제할 방법이 없다”며 “동물보호법 시행령이 동물장묘업의 영업범위와 시설기준, 등록절차 등 외 입지 기준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동물 애호가들은 동물장묘시설이야말로 동물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것이자 펫로스(pet loss) 증후군에 시달리는 반려인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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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장례식장 입관.


조대환 한국동물장례협회장은 “반려동물에 대해 장례를 치르는 것은 이미 시대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며 “동물장묘시설은 단순한 서비스 영업이 아니라 생명존중 사상에 기초해 반려동물에 대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사체를 적법하게 처리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옥진 한국동물매개심리치료학회장은 “미국의 동물장묘문화는 120여년, 일본은 90여년으로 매우 오래돼 동물 공동화장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동물장례에 적합한 시설기준과 규제기준을 먼저 제시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주민들 일일이 만나 설득”… 갈등 해결 키워드는 ‘소통’

“동물장례시설 이용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향한 마음입니다.”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에 자리한 ‘페트나라’는 1999년 9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동물장례식장이다. 반려인이 원하는 종교의식에 따라 치르고 추모관과 사이버분양소를 운영해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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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통진읍에 위치한 `페트나라`


박영옥(52) 대표는 “반려동물의 죽음이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것이 안타까워 장례 업체를 설립했다”며 “동물에 대한 생명윤리 의식을 높이고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면 장묘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동물장묘시설을 운영한 계기는 8년여간 동고동락했던 애견 ‘말티즈’를 잃고 나서부터다. 질병으로 죽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려 했지만 전국 어디에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곳이 없어 산에 몰래 묻을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 주변은 현재 공장지대이지만 일찍이 터를 잡았다. 인근 주민들의 인식도 좋은 편이다. 소각로 자체가 무염 무취로 친환경적인 데다 마을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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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우바스’ 수목장 모습.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이면 한 야산 기슭에 위치한 ‘우바스’는 주민과 공감대를 형성해 안착에 성공한 곳으로 꼽힌다. 부지 1만4000㎡에 납골당과 화장장, 추모실은 물론 수목장지까지 두루 갖추고 동물장묘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6월이다. 화장 건수는 불과 6개월 만에 450여건이나 된다.

조운희(50) 대표는 “장묘시설이 시내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고 주변에 마을이 분포해 주민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며 “그러나 대화로 설득하고 사업장으로 초청해 모든 시설을 공개하자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계획서와 화장로 대기환경성적서 등을 손에 들고 일일이 마을 이장과 주민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마을 애경사를 챙기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전주·대구·경북·경남·파주·김포·청주=김동욱·문종규·전주식·송동근·이돈성·김을지 기자 kdw7636@segye.com,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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