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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한겨레 사설] 여론 반대에도 끝내 ‘김영란법’ 후퇴시킨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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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민권익위원회가 11일 끝내 청탁금지법(세칭 ‘김영란법’)을 후퇴시켰다. 이미 부결된 내용을 불과 2주일 만에 일부 자구만 바꾼 뒤 다시 상정해 통과시켜버렸다. 법을 시행한 지 1년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무리수를 써가며 서둘러 손댈 일인지 안타깝다. 오랜 논의를 거쳐 진통 끝에 도입한 청탁금지법 취지를 훼손하는 데 이 법을 만든 기관이 앞장선 모습이니,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가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원위원회를 열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가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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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처로 ‘농수축산물 및 원료·재료 50% 이상이 농수축산물인 가공품’은 선물 한도가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랐다. 농수축산 업계를 배려하려는 뜻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꼭 이렇게 예외를 두는 방안이어야 했는지 궁금하다. 한번 예외를 인정하면 여기저기서 또 다른 예외를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당장 ‘식사 한도 3만원’을 그냥 두기로 한 걸 놓고 요식업계가 형평성 시비를 제기하며 반발한다는데,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셈인가.

누차 말했지만, ‘3-5-10’(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 규정은 ‘이 정도까지 허용한다’는 취지가 아니다. 직무와 관련되면 모든 식사와 선물을 금지하되 ‘원활한 직무수행 등’ 몇 가지 예외적 경우에 한해서 한도 액수까지는 예외적으로 봐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예외가 있는데 그 예외의 범위를 넓히자는 게 이번 개정의 본질이다. 법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법 제정을 주도한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도 “이해관계자들끼리는 식사, 선물, 경조사비 모두 금지하겠다는 건데 논점이 비용 한도로 흘렀다”며 개정에 반대했다. 그런데도 권익위가 법 취지를 퇴색시키는 데 일조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다만, 권익위가 이번에 경조사비 현금 상한액을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춘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10만원 한도’가 오히려 ‘10만원은 해야 한다’는 통념으로 굳어져 경조사 부담을 높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청탁금지법 손질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선 이는 이낙연 국무총리라고 한다. 형식적으로는 권익위가 나섰지만 실질적으론 이낙연 총리가 개정을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남지사를 지내 농어민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일 수 있겠으나, 국민 전체의 뜻과 시대적 가치를 수렴해야 할 국무총리로선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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