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왜냐면] 스페인어 할 줄 모르는 인천국제공항 / 홍승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홍승한
서울 성북구 정릉4동

지난 12월10일 일요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입국하는 페루인을 픽업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세계 최고의 국제공항답게 입국 게이트의 상단에는 화면으로 도착한 탑승객들의 현재 동선이 실시간 중계되고 있어 탑승객들이 현재 입국심사를 받고 있는지 짐을 찾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페루인은 모든 절차가 끝나 게이트로 나왔어야 하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나오지 않았고 혹시 입국 절차에 문제가 있나 걱정되기 시작했다. 출입국관리소에 전화하니 재심사를 받고 있는 외국인 중 페루인은 없다며 비행기에 타지 않았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소와 해당 항공사를 통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탑승객의 탑승 유무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날 스페인에서 오는 그 페루인은,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비행기도 처음 타본 19살 소녀여서 혹시 그 아이가 스페인에서 환승을 못 했나, 국제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은 더해만 갔다. 재차 항공사에 탑승 유무를 물었지만 역시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공항 안내데스크를 통해 공항 내 안내방송을 권유받았다. 안내데스크를 찾아가 상황 설명을 하고 안내방송을 요청했지만 안내방송을 할 수는 없었다. 스페인어 안내방송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보면 세계 언어별 사용자 순위에서 스페인어는 중국어에 이어 2위다. 영어보다 사용자 수가 많다고 한다.

인천국제공항은 어떤 공항인가. 세계항공서비스평가 1위를 12년째 수상한 세계적인 공항이 아닌가. 이런 인천공항에서 스페인어 안내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동행한 사람 중 스페인어에 능통한 사람이 대신 안내방송을 할 수 없냐고 묻자 그것도 불가하다고 했다. 대신, 영어 안내방송을 해준다고 하여 그렇게 했지만 영어를 모르는 페루인이 어떻게 그 안내방송을 이해할 수 있으랴.

혹시 다른 게이트로 나왔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함께 온 일행들이 뿔뿔이 흩어져 그 페루 소녀를 찾아나섰다. 결국 비행기 도착 후 4시간여 만에 그 페루 소녀를 운 좋게 찾게 됐다. 그 페루 소녀를 통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그 페루 소녀는 입국 게이트를 착각해 엉뚱한 게이트로 짐도 찾지 않고 나왔고(인천공항에서는 입국 게이트가 여러개 있다), 인천공항 내의 어떤 곳에서도 3시간이 넘는 동안 스페인어를 통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했다. 오로지 영어로만 묻는 인천공항 직원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세계항공서비스평가에서 십수년째 1등을 했다는 공항인가 의구심이 들기만 했다.

인천국제공항도 이럴진대 한국 어디에서 스페인어를 통해 안내를 받을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에 열광하는 남미 사람들이 과연 한국을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을 찾은 남미 사람들이 과연 다시 한국을 찾아올까? 영어가 세계공통어라는 것은 영어 우월주의에 빠진 한국인의 착각이란 생각이 든다. 이 세계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많다. 미국과 가깝다는 남미, 그곳도 그렇다. 세계화를 지향한다면 영어와 더불어 스페인어에 대한 한국 내 인식도 달라져야 하겠다. 최소한 인천국제공항에서만큼은 말이다!

참, 페루에서 온 19살 소녀는, 10년 만에 한국에서 만난 엄마(페루인)에게 만나자마자 혼이 났다. 뭐라고 혼이 났냐고? “그러게 영어 공부 하라고 했지?” 한국이나 남미나 영어, 영어가 문제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