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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매경포럼] 창의적이고 당당한 외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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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마천이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한 춘추시대 명재상이 있다. 기원전 6세기께에 살았던 정나라 자산이다. 사마천은 '사기, 순리열전(循吏列傳)'에 이렇게 썼다. "자산이 정나라를 다스린 지 26년 만에 죽으니 장정들은 소리 내어 울고 노인들은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말했다. 자산이 우리를 버리고 죽다니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산단 말인가." 자산보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난 공자는 '논어, 공야장(公冶長)'에서 자산을 겸손과 공경, 은혜와 의로움을 겸비한 군자의 모범이라고 평했다. 이런 자산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창의적 외교다. 그가 살았던 당시 정나라는 강대국인 진(晉)과 초(楚)의 패권 경쟁에 휘말려 있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다. 진을 섬기면 초나라가 을러대고, 초를 따르면 진이 공격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는 게 정나라의 최우선 외교 과제였다.

자산은 대략 세 가지 전략으로 난국을 타개했다. 우선 상대 논리로 나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는 기원전 548년 진나라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정나라가 이웃 소국인 진(陳)나라를 공격한 것에 시비를 걸자 자산은 이렇게 일갈했다. "대국이 소국을 정벌하는 것은 과거에 항상 있었던 일이다." 이 대답에 패권국을 지향하는 진나라는 할 말이 없었다. 자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훗날 공자는 이 대목을 이렇게 평가했다. "진나라가 큰 국가인데도 정나라는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진(陳)나라로 진공했다. 자산의 뛰어난 외교적 응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외교에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지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번째 전략은 어젠다 선점이다. 기원전 529년 진나라가 제후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자산은 맞짱 토론 끝에 실리를 챙기는 성과를 얻었다. 소국이 대국에 바치는 공물 관행을 어젠다로 선점한 결과였다. "예전부터 공물은 각국의 지위와 형편에 따라 결정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도가 없고 독촉도 심하다. 공물 제도를 새로 정해야 한다." 자산이 이슈를 제기한 뒤 논쟁이 하루 종일 이어졌고 자산의 주장이 관철됐다.

자산의 외교를 가장 빛나게 한 세 번째 전략은 강대국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태도였다. 두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자산이 정나라 군주를 수행해 진나라를 방문했을 때였다. 진나라는 약소국인 정나라 사절단을 홀대했다. 이에 자산은 영빈관 담을 부수고 공물을 밖에 늘어놓았다. 의도적으로 외교적인 무례를 저질렀던 것이다. 깜짝 놀란 진나라 관료가 항의하자 자산은 이렇게 답변했다. "지금 진나라는 별궁의 넓이가 몇 리가 된다고 하는데 제후를 맞이하는 객사는 마치 하인의 집과 같다. 담장을 헐지 않으면 갖고 온 물건을 둘 데가 없다." 자산의 당찬 말을 전해 들은 진나라 군주는 즉시 정나라에 사과했다.

진나라 실권자인 한기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 사건도 유명하다. 기원전 526년 사신으로 온 한기가 정나라 상인 소유의 옥환을 뇌물로 요구했다. 정나라 군주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산은 거절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파했다. "대국 사람이 소국에 명하여 요구한 바를 모두 얻으면 장차 무엇으로 그 요구를 당할 것이오? 한 번 들어주고 한 번 들어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 죄가 더욱 클 것이오.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변경 고을로 전락하는 날에는 우리는 제후국의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오."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부터 중국을 국빈방문하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도 한다. 중국은 거리상으로 우리과 가장 가까이 있는 강대국이면서 까다로운 상대다. 북핵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껄끄러운 사안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것이다.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기존 외교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국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그들의 논리로 실익을 챙기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독창적 해법을 어젠다로 던져야 한다. 중국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지적해야 한다. 약소국을 강소국으로 만든 자산의 창의적 외교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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