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이스라엘 수도' 선언에 반발하지만
전략적 이익 등 자국 득실 따지며 '행동' 미뤄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에 반발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7일(현지시간)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돌을 던지며 시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서안에 수백 명의 병력을 추가 배치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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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연맹(중동 및 아프리카 아랍계 22개국)도 미국에 대해 예루살렘 선언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10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 긴급 외무장관 회의에선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건 국제법 위반이며 역내 긴장과 폭력을 끌어올리는 그 결정을 철회하라는 성명이 채택됐다.
하지만 정작 미국산 제품 거부라든가 대미 협력 중단과 같은 ‘알맹이’는 빠졌다. “표현(레토릭)은 장황하지만 구체적 행동은 부족한 결의”(AP통신)라는 지적이다. 주요 중동 국가의 복잡한 득실 계산과 향후 대응을 전망해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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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대표 자리 노리는 에르도안
하지만 실제로 터키가 이스라엘과 단교할지는 미지수다. 2010년 이스라엘의 터키 민간 구호선 공격으로 냉각됐던 두 나라 관계는 지난해 회복됐고 가스전 개발 및 수출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보다는 반미 정서의 이슬람주의를 독려함으로써 에르도안 자신이 ‘아랍·이슬람 국가 리더’ 이미지로 자리매김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에르도안은 13일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이슬람협력기구(OIC) 긴급 정상회의에서 이를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포함 57개 이슬람 국가로 구성된 OIC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창설됐지만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례적으로 강한 제스처가 “이란 제재법 위반 및 반체제 이슬람학자 페트라흐 귈렌 송환 스캔들로 대미 입지가 좁아진 에르도안의 국면 타개용”(전 지한통신 서울특파원 알파고 시나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4월 개헌으로 초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한 에르도안은 트럼프 취임 때 기대했던 시너지를 내긴 커녕 오히려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에 휘말려들어가는 상황에 처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로버트 뮬러 특검팀이 기소된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터키 관료들 사이에서 귈렌 송환 등을 둘러싸고 금전 거래 논의가 오간 혐의를 포착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시리아 사태 중재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부터). [타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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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헤즈볼라 측면 지원 명분으로
그렇다고 이란이 직접 예루살렘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은 작다. 이제껏 하던대로 이스라엘 접경국가의 무장세력들, 즉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에게 공공연히 군사력을 지원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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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물밑 교류 속 反이란 목청만
사우디로선 예멘·시리아 사태에 군사 개입한 것만으로도 출혈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 추가적인 외세 개입이 어렵다.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을 불러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에 준하는 계획을 미리 흘렸다는 관측 보도(뉴욕타임스 등)까지 나오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중앙포토] |
측근 비리 속 국내 정치 장악력 회복
그러나 트럼프 취임 이후 세계 정상 가운데 가장 먼저 백악관으로 달려갔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번 선언에 힘입어 확실한 국내 입지를 다진 것은 분명하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는 군 장성 출신 측근들이 줄줄이 방산 비리로 체포된 데 이어 본인도 재벌·언론과의 향응 유착 혐의를 받아 왔다. 다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위 및 하마스의 공격이 계속돼 치안·안보가 불안해질 경우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하마스보다도 존재감 약화된 압바스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사진 위키피디아] |
나아가 지난 10월 가까스로 합의한 파타와 하마스 간의 역사적 통합문도 휴지조각이 될 위기다. 파타는 이 합의에 따라 12월 1일부터 가자지구의 통치권을 이양받기로 돼 있었지만 하마스의 무장해제에 실패하면서 이스라엘과도 평화 협상에 착수하지 못했다. 트럼프가 이번 선언과 관련해 ‘충격 요법’을 통해 이·팔 간 협상을 이끌어내겠다고 한 것도 이같은 팔레스타인의 사분오열과 관련된다.
압바스 수반은 이달 말 중동을 방문하는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회담을 거부하는 등 강력한 반발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랍연맹 등 주변국가의 실질적 지원이 없이는 마땅히 맞설 카드가 없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가 연일 군사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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