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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연말 ‘싸늘한 기부’①]“내 돈, 어디 쓰는지 못 믿겠다”…기부를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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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여유 없다”, “투명성 불신”…기부금 ‘뚝’

-10명 중 6명 “기부금 사용처 모른다”

-공익법인 25%만 결산 서류 공시…“공시의무 넓혀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1. 6년차 직장인 김모(34ㆍ여) 씨는 얼마 전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한 단체의 정기 후원을 끊었다. 7년 째 매달 2만원씩 기부한 김 씨였지만 불현듯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좋은 마음으로 수년 째 기부했지만 사실 그 동안 그 어떤 보람도 느낄 수 없었을뿐더러 이영학 사건 등이 터진 후부턴 기부금 사용처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며 “그렇지 않아도 먹기 살기 힘든데 굳이 후원금 사용에 대한 확신도 없이 돈을 보낼 필요 있나 싶어 후원을 중지했다”고 말했다.

팍팍한 살림살이와 함께 기부 제도 투명성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면서 기부자들이 매년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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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거리에서 한 시민이 한국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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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금 기부를 하겠다는 응답은 지난 2011년 36.4%에서 올해 26.7%로 급락했다.

매년 기부 참여도가 줄어드는 배경에는 경제적인 팍팍함과 함께 기부단체에 대한 낮은 신뢰도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남녀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 964명 중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 ‘기부를 요청하는 시설, 기관,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를 택한 비율이 23.8%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52.3%)’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기부금 사용처를 알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모른다”라고 답한 응답자도 61.7%에 달했다.

최근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유용하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올해 기부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추락한 상황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어금니 아빠 사건’의 이영학(35)은 거대백악종 치료비 명목으로 받은 기부금 12억을 대부분 차량 구입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고 지난 8월에는 결손아동 후원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이 후원금 128억 대부분을 횡령한 사실이 확인돼 공분을 샀다. 지난 2010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이 시민들의 성금을 유흥주점에서 사용하는 등의 비리도 적발된 바 있다.

문제는 기부단체의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 실적 정보가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어 기부자들은 자신들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지정기부금단체들은 매년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실적을 해당 단체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지만 사회복지법인, 종교법인, 장학재단 등은 법인세법시행령에 따라 공시의무 부과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공시의무가 없는 단체만 3만여 개인데 반해,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지정기부금단체는 3500여 개에 불과하다.

공익법인(종교단체 제외)이어도 자산총액이 5억원 이상이거나 수입금액과 해당사업연도에 출연 받은 재산의 합계액이 3억원 이상이면 결산서류를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15년에 등록된 공익법인 가운데 종교법인을 제외한 공익법인 16,400여 개 중에서 공시 의무가 있는 단체는 52.3%에 불과했다. 전체 공익법인 중 25%만 결산 서류 등을 공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공익성을 효과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시민들이 기부를 망설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들이 낸 기부금이 목적대로 쓰이는 지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며 “기부단체에 대한 정보를 한번에 확인할 수 있는 통합정보시스템 구축과 함께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 제출 의무가 있는 지정기부금단체의 범위를 넓히고 공시의무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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