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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연봉 7천' 기준에 눈물 흘리는 신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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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와 내년 9월 결혼을 약속한 직장인 김윤지(27)씨. 그는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을 보고 맥이 풀렸다. 신혼부부를 위한 각종 주거 지원 대책이 나왔는데 정작 해당 사항이 전무했다. 이유는 단 하나. 소득이 기준보다 높아서다.

김씨는 "남자친구와 연봉을 합치면 세전(稅前) 기준 7000만원 겨우 넘는데, 매달 실수령액은 500만원이 안된다"며 "누군가에겐 높은 연봉일 수도 있겠지만 주거비 부담이 큰 서울에서는 굉장히 빡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수저가 아니라서 부모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지원까지 배제된다니 답답하다"며 "돈을 더 모을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는 신혼부부를 위한 각종 주거 대책이 대거 포함돼 있다.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분양주택만 27만가구가 공급된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2배로 늘리고, 주택구입·전세대출 금리를 우대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문제는 정부가 정한 소득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보니 젊은 맞벌이 부부 중 상당수가 이번 대책에서 제외된 것.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주거복지망을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맞벌이 부부들은 '우리가 사각지대'라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맞벌이 부부 7000만원 넘으면 혜택 못받아

정부는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의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을 기존보다 2배 늘릴 계획이다. 공공주택은 현행 15%에서 30%로, 민영주택은 10%에서 20%로 상향조정한다.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혼부부 자격요건 역시 확대했다. 지금까지는 혼인기간 5년 이내에 1자녀(태아 포함) 이상인 무주택 세대였지만, 앞으로는 혼인기간 7년 이내에 자녀가 없어도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려볼 수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새 아파트 분양을 기다리는 신혼부부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전용 85㎡ 이하 아파트가 사실상 100% 청약가점제로 바뀌면서 가점이 낮은 신혼부부는 당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 기준이 문제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받기 위한 소득조건은 외벌이인 경우 전년도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00%, 맞벌이는 120%다. 3인 가구 이하 맞벌이의 경우 부부 월급 합산액이 월 586만원, 연봉으로 7032만원이 넘으면 특별공급을 신청할 수 없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4년제 대졸자 신입사원 초임은 대기업이 3855만원, 중소기업이 2523만원이다. 웬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라면 신청 자격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신혼부부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 신혼 희망타운도 맞벌이 부부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정부는 서울·과천 등 수도권에 입지 좋은 곳에 7만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신혼희망타운 역시 소득기준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120% 이하, 연봉 7000만원 선으로 책정됐다.

신규 분양뿐만이 아니다. 기존 주택을 사려 해도 여전히 소득 기준이 발목을 잡는다. 정부는 금리를 낮춘 신혼부부 전용 주택구입·전세자금 대출을 내년 1월 출시해 이자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택구입대출의 경우 부부합산 연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경우, 전세자금대출은 부부합산 연소득이 6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만 신청 가능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맞벌이 신혼부부 38만1941쌍 중 연소득이 7000만원을 넘으면서 1억원에 못 미치는 신혼부부는 10만2946쌍으로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연소득 5000만원~7000만원(10만4745쌍·27.4%)을 버는 신혼부부 숫자와 거의 차이가 없다.
조선일보

'주거복지로드맵' 신혼부부 지원 내용./국토교통부 제공



■“소득 적어도 재산 많은 부부가 유리”

이번 주거복지 로드맵에 담긴 혜택들이 결국 현재 소득이 적거나 거의 없지만 부모 재산이 많은 이른바 '금수저'를 위한 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에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자격에서 소득 제한을 없애달라는 내용의 '신혼부부 특공제도 개선'이라는 청원이 올라와 있는데, 이 글은 현재 1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특별공급을 비롯해 대출 관련 소득기준을 올려달라는 취지의 청원까지 합치면 서명자는 1500여명에 달한다.

한 청원자는 " 분양가 9억원이 넘는 고가(高價)주택의 특별공급은 저소득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은 못벌지만 부모가 부자인 금수저에게만 유리한 제도"라며 "분양가가 9억 넘는 집을 결혼한지 7년도 안되고 소득이 월 500만원도 안되는 사람이 살 수 있는게 말이 되느냐. 이런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세금도 많이 내는 사람은 오히려 내집 마련의 기회가 없어진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실제로 지난 9월 분양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센트럴자이' 전용면적 59㎡의 신혼부부 특별공급 분양가는 11억원이었다. 고가 아파트여서 중도금 집단대출도 불가능했다. 최소 7억원 이상 현금이 있어야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10가구 모집에 132명이 몰렸고 당첨자 중 사실상 소득이 거의 없는 20대가 30%(3명)였다.

결국 소득 기준을 지역별로 현실에 맞게 달리하거나 연봉 이외에 종합적인 자산 요건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저소득층 임대주택의 경우 입주자 선정시 소득 외에 자동차와 다른 부동산 보유 여부도 따진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소득 기준을 올리는 등 유연하게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며 "단순 소득 조건뿐만 아니라 증여·상속에 따른 자산 보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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