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도쿄 리포트]명장 리피에 '농락'당하는 한국 축구의 현실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서울

마르첼로 리피 중국대표팀 감독이 9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한국-중국 맞대결에 앞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도쿄=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훗날 사가가 ‘한·중전의 역사는 리피 감독 부임 전과 후로 나뉜다’고 쓰지 않길 바란다.

명장은 괜히 명장이 아니었다. 지난 2015년 10월 중국 대표팀에 부임한 이탈리아 출신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06년 조국 이탈리아를 독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리피 감독의 연봉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180억원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마 한국 대표팀 사령탑의 10년치 연봉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만큼의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 최근 두 차례의 한·중전을 통해 드러났다.

한국은 리피가 중국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지난 3월 중국 창사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원정 경기, 그리고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등에서 두 번 맞붙었다. 앞선 원정 경기는 말할 필요가 없는 한국의 패배였다. 10일 격돌도 2-2로 비겼으나 리피 감독이 22세 이하 어린 선수들을 대거 투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패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 졌다기보다는 리피에 졌다는 말이 옳을 만큼 그라운드 안팎에서 출중한 능력을 과시하며 한국 축구를 휘몰아쳤다.

두 경기의 공통점은 우선 리피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창사 참사’로 불리는 3월 원정에서 중국은 한국의 지역 방어 세트피스 수비 허점을 간파하고 전반 35분 코너킥 때 위디바오의 헤딩골로 웃었다. 울리 슈틸리케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후반 시작과 함께 부랴부랴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집어넣었으나 리피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공격수 우레이를 빼고 우시를 집어넣어 미드필드를 강화했다. 이어 김신욱으로 가는 크로스도 막고, 그의 헤딩 뒤 세컨드 볼도 따내 한국의 고공 플레이를 무력화시켰다.

지난 9일 격돌은 더 빛났다.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리피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훌륭했다. 사실 중국은 전반에 1-2로 뒤집힌 뒤 일방적으로 몰렸다. 한국 대표팀이 동아시안컵 참가 전 했던 고려대와의 연습 경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 리피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선제골 넣은 공격수 웨이스하오를 빼고 수비수 리쉐펑을 투입했다. ‘지는 상황에서 왜 수비수를 넣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으나 그가 선택한 변화는 거짓말처럼 들어맞았다. 중국이 두꺼운 스리백으로 바꾸면서 전반 각각 1골 1도움을 올린 김신욱과 이재성의 위력이 감소됐고, 반면 중국은 측면을 이용한 빠른 역습과 크로스로 공격력을 회복했다. 결국 후반 31분 리쉐펑의 크로스가 3월 결승포의 주인공 위다바오의 머리를 맞고 골망을 출렁이면서 2-2 무승부가 이뤄졌다.

리피 감독은 경기 전·후에도 말을 장황하게 하는 경우가 없다. 3월 맞대결을 앞두고는 “한국을 존중하지만 결과가 필요하다. 내일 보면 안다”고 했고, 이긴 뒤엔 “이겼지만 내용은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엔 경기 전 “결과보다는 테스트다. 그렇다고 져서 핑계댈 생각은 없다”고 하더니 극적으로 비긴 뒤엔 “어린 선수들이 아주 잘했다. (후반 전술)변화도 잘 이뤄졌다”고 했다. 설전에 휩쓸리는 경우가 없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항상 내용도 생각하면서 간결하게 필요한 메시지만 전달한다.

중국 축구엔 ‘공한증’이란 말이 있다. 2010년 일본 도쿄 동아시안컵에서 0-3으로 한국이 질 때까지 양팀의 역대 전적이 16승11무, 한국의 일방적인 우세였기 때문이다. 15억 대륙의 중국이 4000만 인구의 한국과 남자 축구 경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은 그들의 수치이자 우리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한증이 역사 뒷편으로 사라지는 느낌이다. 2010년부터로 한정하면 6번 붙어 2승2무2패로 호각지세다. 리피 감독 부임 뒤엔 맥 빠진 경기력으로 1무1패에 그치고 있다. 중국은 이제 한국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 바로 거액의 명장 리피가 있다. 그의 지략과 발언에 한국 축구가 매번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을 축구계가 알아야 한다.
silva@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