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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인스타 거기 어디?] 골목상권 죽는다고? 여기 보면 그런 말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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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맨션 1층의 동네가게 '보마켓'

진기한 식료품에 카페까지

럭셔리 마텟처럼 취향 담긴 공간

중앙일보

'보마켓' 외관. 야외에도 테이블을 둬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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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켓(@bomarket)'은 서울 소월로 남산맨션 1층에 있는 미니 가게다. 가게라고 한 건 굉장히 뭉뚱그린 표현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 보통 아파트라면 단지 내 상가에 편의점부터 카페·분식집까지 여러 가게가 세트로 갖춰지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외진 한 동 건물에 100여 세대가 모여 사는 남산맨션에서는 보마켓이 그 모든 가게 역할을 다 한다. 융·복합이라는 말이 거창한 학문적 표현이 아니라는 걸 이곳에선 실감할 수 있다.

보마켓은 2014년 문을 열었지만 서너 달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피드가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 현재 800여 개 해시태그 게시물 다수가 2017년 6월 이후에 올라온 것들이다 '알래스카에 딱 하나 있을 법한 식료품점' '조용하고, 편안하고, 느낌 좋은 나만의 공간'이라는 소감을 달고서다. 끼리끼리 알던 동네 아지트가 '외부인'에게까지 퍼지고 있는 셈이다. 인근 한강진역 주변 쟁쟁한 카페·음식점을 뒤로 할 만한 동네 가게의 매력은 대체 뭘까. 직접 찾아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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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가게라는 위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벗어나 진기한 국내외 식료품과 일상용품들 파는 편집숍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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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량의 품목을 여유있게 진열하는 방식이 프리미엄 마켓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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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켓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 자리는 원래 수퍼였다. 남산맨션의 위치가 물 한 병 사려해도 한강진역까지 나가야 하니 동네 주민들에게는 이 수퍼가 중요한 편의시설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을 닫게 되자 아파트 주민이던 유보라(39)·나훈영(41) 부부가 이 공간을 새롭게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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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보마켓&#39;을 감각적인 동네 아지트로 만든 유보라(왼쪽) 나훈영 부부. [사진 나훈영 제공]


자동차 디자이너인 유씨와 공간 콘텐트 기획자인 나씨가 창작자로서 업의 경험을 살렸다. 나씨는 이미 한남동 꼼데가르송 내 '로즈 베이커리'를 운영한 경험이 있고,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보키친'을 맡고 있다. 부부는 "하나를 사더라도 취향을 겨냥한 물건을 팔자"고 마음 먹었고, 스스로 먹어보고 써 본 제품 중 감각적인 것만 골라 가게에 내놨다. 보마켓에서 만난 주민 신승연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수퍼 하나 만드는데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공사를 몇 달씩 했어요. 문을 열고 나서야 아, 이래서 시간이 걸렸구나 이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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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한쪽을 수퍼, 다른 한쪽을 카페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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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드러내자 사람들은 '라이프 셀렉트숍'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직접 가 보면 이유를 알 만하다. 33㎡(10평)이 될까말까한 작은 공간이 예쁘고 진기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한쪽 벽에는 라면과 참치캔부터 고구마 과자·우유 등 대형 체인 마트에서 보는 국산 식료품이 차곡차곡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하인즈 케첩, 땅콩잼과 포도잼이 섞인 '그레이프 피넛버터', 호주 대표 초콜릿 과자 '탐탐', 맥캔즈 오트밀 등 해외 상표도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먹거리뿐일까. 럭키 스트라이프 담배부터 일본 로이히 동전 파스, 마비스 치약(현지에서도 보기 드물게 갖가지 향이 다 있다!)까지 외국 여행 가면 하나쯤 사 보는 각국 대표 생필품이 이곳에 다 모여있다.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도 족히 100여 종이 넘을 만물상인 셈. 마치 '물어보면 다 구해준다'는 남대문 수입상가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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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치약계의 샤넬&#39;로 불리는 마비스 치약을 다양한 종류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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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옛 '미제 가게의 추억'과는 분명 다르다. 디스플레이의 힘이다. 별것 아닌 것들을 탐나게, 예쁘게 두는 '2차 가공'을 해서 충분히 인스타그래머블하다. 품목별로 여유를 잡고 10개를 넘지 않게 진열하고, 실한 토마토와 양파를 잘 닦아 나무 박스에 넣어둔다거나, 수세미 하나도 색깔을 맞춰 금·은사 실에 묶어두는 식의 모양새다. SSG 못잖은 프리미엄 마켓을 닮아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은진씨는 "한 번에 10만원어치씩 생필품을 사러 오는 외부 손님들도 꽤 된다"며 "마비스 치약, 식빵 모양 수세미, 올드 패션드 비누형 샴푸 등이 베스트셀러"라고 말했다. 가격은 시중에서 파는 가격보다 대략 10% 정도 비싸다. 가령 마비스 치약이 1만1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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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편의점과 라면의 조합처럼, 보마켓에선 취향 있는 일상용품과 브런치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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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반이 수퍼라면, 나머지 반은 카페다.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커피(3500~4500원)·샌드위치(5000원)·라면(3000원) 등을 판다. 특히 블루베리·아몬드·건조딸기가 들어간 시리얼(5000원)이 인기 메뉴다. 주민들은 주로 테이크 아웃을 하는데, 최근 외부 손님들이 늘면서 오후 12~3시 사이 테이블이 꽉 차는 날이 종종 생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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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켓에서 인기 있는 시리얼 메뉴. [사진 보마켓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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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켓에서 파는 와인. 3만~4만원대가 주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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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켓에는 안에도 밖에도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하나씩 있다. 볕 좋은 날 커피 한 잔 하기도 좋지만, 이른 저녁 샌드위치와 와인 한 잔, 맥주 한 캔씩 가볍게 즐기기 그만이다.

물론 파는 술 역시 '취향'이 묻어난다.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대동강 맥주, 희곡 '헨리 4세'에 나온 쉐리 와인, 영화 '사케의 탄생'에 나온 '테도리기와 준마이긴조' 등이 리스트에 있다. 다만 주인의 취향만 반영되는 건 아니다. 꽁치·골뱅이 통조림은 술안주에 제격인 주민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들인 물건들이다. 유씨는 "손님과 교감하는 마켓으로, 비로소 완성된 공간이 됐다"고 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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