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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낚싯배사고 1주일] 손수레에 고무보트 싣고 뛴다…해경 장비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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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짜리 미니 연안구조정으로 202척 관리하는 해경파출소

파출소에 등록된 민간해양구조대 도움 없으면 출동 불가능

파출소 95곳 중 악조건 기상여건 출동 가능한 구조정 58척

전국 3개 특수구조단·19개 구조대 구조보트 중 신형은 14척

전용계류장 23곳… 민간어선 함께 사용, 신속한 출동 걸림돌

국회·해경… 구조보트·연안구조정 확충, 계류장 신설도 추진

국민 생사달린 해경파출소 열악한 구조장비 실태


지난 7일 오후 5시 30분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항. 만조시간이 되면서 바닷물이 포구 안쪽까지 깊게 들어왔다. 어둠이 깔리면서 방파제를 따라 가로등과 등대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중앙일보

충남 태안군 모항항에 정박 중인 해경의 연안구조정.(왼쪽 작은 배) 승선 정원 3명의 1.2t짜리 미니 보트로 야간항해장비가 없어 해가 지면 출동하지 못한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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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안쪽에는 파란 플라스틱 계류장에 소형 보트가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태안해양경찰서 모항파출소가 운영 중인 연안구조정이다. 1.2t급으로 승선 인원은 3명이다. 조난·난파 등 해상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모항파출소에서 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1.5m 이상의 파도가 치면 방파제 밖으로는 운항이 어렵다. 배가 작아 파도에 뒤집힐 수 있어서다.

이 구조정에 장착된 장비는 서치라이트·경광등이 전부다. 레이더 등 야간항해 장비가 없어 일출 전과 일몰은 물론 안개가 짙게 끼면 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못한다. 사고가 나면 모항파출소에 등록된 민간해양구조대에 손을 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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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모항항에 정박 중인 해경의 연안구조정.(왼쪽 작은 배) 승선 정원 3명의 1.2t짜리 미니 보트로 야간항해장비가 없어 해가 지면 출동하지 못해 민간해양구조대(오른쪽 큰 배)에 협조를 요청한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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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3교대로 근무하는 직원들은 출근하면 ‘오늘은 민간해양구조대 중에서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를 확인하는 게 일과가 됐다. 모항파출소에는 25척의 민간해양구조대가 등록돼 있다. 이 배들 가운데 3척 정도를 선정해 그날그날 출동업무를 지원하도록 요청한다.

모항파출소에 등록된 배는 202척이나 된다. 이 배들을 관리하는 해경의 연안 구조정은 1.2t짜리 미니 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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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모항항에 정박 중인 해경의 연안구조정. 승선 정원 3명의 1.2t짜리 미니 보트로 야간항해장비가 없어 해가 지면 출동하지 못한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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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일영(58) 모항파출소장은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출동하고 싶어도 타고 나갈 배가 없다”며 “인력 증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건 24시간 출동이 가능한 구조정”이라고 말했다.

평택해양경찰서 안산파출소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안산파출소에는 3t급 연안구조정이 배치돼 있다. 365일 24시간 출동해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배는 항상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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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안산파출소 대원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 있다. 안산파출소에는 계류장이 없어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나간 뒤 연안구조정에 탑승, 출동한다. [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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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산파출소가 위치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항은 조석간만의 차이 때문에 갯벌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연안구조정을 부두에 바로 접안하지 못하고 50m가량 떨어진 해상에 정박한다.

신고를 받으면 안산파출소 직원들은 파출소에서 순찰차를 타고 500m를 이동한 뒤 부두 위편에 보관하는 고무보트를 손수레에 싣고 바다로 달려간다. 손수레에 고무보트를 싣고 달리는 거리만 15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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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안산파출소 대원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고박중인 연안구조정으로 가고 있다. 안산파출소에는 계류장이 없어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나간 뒤 연안구조정에 탑승, 출동한다. [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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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곧바로 출동이 가능한 게 아니다. 바다에 띄운 고무보트에 승선한 뒤 노를 저어 연안구조정까지 50m를 더 이동해야 비로소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다. 평상시 훈련 때도 15분이 넘게 걸린다. 야간이나 강풍이 불 때는 5~10분가량이 더 필요하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50m를 노를 저어도 배가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안산파출소가 보유한 3t급 연안구조정은 건조한 지 18년이나 된 낡은 배다. 내구연한을 3년이나 초과했다. 대체할 구조정이 없어 정비에 들어가면 노를 젓는 고무보트가 유일한 출동수단이 된다. 이 배로 44척의 배를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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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안산파출소 대원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고박중인 연안구조정으로 가고 있다. 안산파출소에는 계류장이 없어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나간 뒤 연안구조정에 탑승, 출동한다. [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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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58) 안산파출소장은 "영흥도 낚싯배 사고 때도 연안구조정을 띄울 수 없어 안타까웠다”며 “갯벌이 많은 지역에는 신형보트보다 바다와 육지를 모두 오갈 수 있는 수륙양용구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항파출소나 안산파출소처럼 민간구조대가 없으면 사실상 출동이 불가능한 게 전국 95개 해경파출소의 현실이다. 236개에 달하는 출장소는 사정이 더 열악하다. 지난 3일 발생한 영흥도 낚싯배 사고 뒤 중앙일보가 확인한 해경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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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안산파출소가 위치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항은 조석간만의 차이 때문에 갯벌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연안구조정을 부두에 바로 접안하지 못하고 50m가량 떨어진 해상에 정박한다. [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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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95개 해경 파출소에 배치된 연안구조정 가운데 기상 여건과 관계 없이 야간에도 출동이 가능한 연안구조정은 58척에 불과하다. 모항파출소처럼 출동이 어려운 연안구조정을 보유한 곳도 37곳에 달한다. 236개 출장소 가운데 구조보트를 보유한 곳은 10분의 1도 안 되는 16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제2의 영흥도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해경의 내년 예산은 1조2718억원으로 올해보다 5.1% 증가했다. 하지만 수색구조 강화 예산은 올해 131억5000만원에서 55억2000만원으로 58%나 삭감됐다. 연안 구조장비 예산도 198억4000만원에서 155억7000만원으로 21.5%나 줄었다. 올해 61억원을 반영한 구조대 신형보트 구입예산은 내년 예산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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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낚싯베 전복 사고 때 해경 영흥파출소 연안구조정이 출동하는 데 지연된 진두항 민간계류장. [연합뉴스]




김길수 한국해양대(해사수송과학부) 교수는 “구조 선박은 24시간 출동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며 “(해경이)인력과 장비를 지원해달라고 하면 (예산 주무부처인)기획재정부가 인색해 예산 반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안구조정과 구조보트가 24시간 상시 출동 가능한 계류시설 확보도 절실하다. 영흥도 사고처럼 민간어선과 계류장을 같이 사용하면서 출동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영흥도 낚싯배 사고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영흥파출소 연안구조정으로 사고 발생 37분만에 도착했다. 구조정이 정박한 곳은 민간계류장으로 민간선박 7척이 함께 계류돼 이들 선박을 풀어내는 데만 13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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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안산파출소 연안구조정이 정박된 방파제 입구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대형철문이 설치돼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은 철문을 잠금장치를 풀어야만 연안구조정이 정박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고무보트 보관장소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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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파출소 95곳 가운데 전용 계류장을 보유한 곳은 23곳에 불과하다. 내년 13곳을 추가해도 3분의 1 수준을 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해수부·자치단체의 협조를 얻어 전용 계류장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해안은 조석간만의 차 때문에 전용 계류장을 마련하지 않으면 배가 갯벌에 걸리는 사례가 자주 발생해서다.

해경은 전용계류장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을 신청하지만 곧바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계류장 대부분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소유인데도 협조가 쉽지 않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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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안산파출소 대원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 있다. 안산파출소에는 계류장이 없어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나간 뒤 연안구조정에 탑승, 출동한다. [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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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가 운영 중인 신형보트(고속단정)의 경우 고장 등에 대비해 추가로 확보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영흥도 사고에서 나타났듯 인천구조대 등이 보유한 구형보트는 야간운항이 불가능하다.

해경 소속의 특수구조단 3곳과 전국 19개 해양경찰서에 소속된 구조대에 배치된 구조보트는 32척이다. 이 가운데 신형은 절반이 채 안 되는 14척에 불과하다. 연말까지 6척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지만 고장과 정기적인 정비로 수리에 들어가면 대체할 신형보트가 없어 ‘제2의 인천구조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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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구조대가 보유 중안 구형보트. 2.5t 크기로 레이더장비가 미흡해 야간 운항 때 위험성이 높다. 지난 3일 영흥도 사고 때 출동지시를 받은 인천구조대는 당시 신형보트가 수리 중이어서 해상으로 출동하지 못했다. [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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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고위 간부는 “최근 몇 년간 중국어선 단속에 장비와 인력을 확충하면서 연안 안전관리 장비 확충이 부족했다”며 “낚시객 등 레저객이 늘어나면서 안전사고도 증가하는 만큼 필요한 장비를 조속히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해경은 구조대·파출소간 거리 등을 고려해 구조요원을 추가 배치하는 거점파출소를 운영할 방침이다. 거점파출소는 구조대와 거리가 멀고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파출소를 선정키로 했다. 장비·인력 확충과 계류장 확보, 교육·훈련 강화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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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구조대가 보유 중인 신형보트. 7.5t 크기로 레이더 등이 장착돼 24시간 출동이 가능하다. 전국 3개 특수구조단(대)과 19개 구조대에 배치된 구조보트 32척 중 신형은 14척에 불과하다.[사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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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완주 국회의원은 “영흥도 낚싯배 사고와 관련해 해경에서 출동시스템을 개선하고 장비를 확충하겠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계류장 신설 등 시급한 과제는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를 거쳐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진호·김민욱·김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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