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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J가 해봤습니다] 출근길에 다녀온 민방위 훈련, "지하 대피소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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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에 민방위 비상소집 훈련 실시

필요한 대피소 안내는 없고 출석 부르기

관행처럼 굳어진 형식적 훈련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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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6일 열린 도심 통합민방위 훈련에서 적 포격 도발에 따른 대응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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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민방위 훈련이 있었다. 최근 북한의 핵무기ㆍ탄도미사일 개발로 한반에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라 긴장감을 안고 다녀왔다. 민방위 훈련장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J가 해봤습니다. 출근길에 다녀온 민방위 훈련을 소개한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 보문동 주민센터에는 건장한 남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오전 7시에 민방위 훈련을 시작해서다. 훈련에 소집된 민방위 대원들이 찾아오면서 주민센터 주차장이 가득 찼다. 주민센터 청사에 들어서자 “훈련장은 4층 강당”이라며 기다리던 직원이 엘리베이터 방향을 가리켰다. 강당에는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훈련참가 확인증에 도장을 찍고 자리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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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민방위 훈련이 열린 보문동 주민센터 앞 주차장에 훈련 소집 대상자들이 가져온 차량으로 가득찼다. [사진 박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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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에 앞서 국민의례를 했다. 가슴에 손을 올리며 간단히 끝냈다. 애국가 제창이나 국기에 대한 맹세 낭독은 없었다. 국민의례 직후 “민방위 대원의 신조 낭독은 생략하겠다”고 했다. 또 “민방위 대원이 알아야 할 6가지 사항은 숙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또한 지나갔다. 부끄럽지만 고백을 해야겠다. 민방위 8년차 대원이지만 민방위 대원의 신조와 6가지 숙지 사항을 기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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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민방위 훈련이 열린 보문동 주민센터에 민방위 훈련에 관한 안내문이 걸려있다. [사진 박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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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던 직원은 “7분 정도 소요될 지진 대응 영상을 본 뒤 훈련을 끝내겠다”며 “이에 앞서 구정(구청행정) 안내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취학 아동은 온라인 취학통지서 제출 서비스 가능하며 14일까지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으니 많은 이용 바란다”며 “한시적으로 이번 달 23일까지 김장 쓰레기도 일반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청이나 주민센터의 행정 사항이 민방위 훈련중에 언급하기에 적절한 내용인지는 이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지난 2015년 구청과 서울시의 갈등에 대한 구청의 입장을 홍보하고 편향적인 정치적 발언을 언급하자 민방위 대원들이 항의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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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보문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민방위 훈련에 참여한 대원들이 지진 대응 교육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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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에서 만난 김 모씨는 “국가에서 통지서 보내 나오라고 하니 왔다”며 “훈련 내용은 뻔한 것 아니냐. 기대하지 않는다”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봤다. 아직 전날의 숙취가 여전한지 대화 도중 술 냄새가 진동했다. 바로 뒤에 서 있던 두 명은 “오랜만에 만났다. 올해가 마지막 교육이냐”며 안부 인사를 전할 뿐 정작 민방위 교육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지하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냐”는 질문에 “지하철역 말고 대피소가 더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지진 대응 교육 영상이 끝나자 보문동 주민센터 이주남 동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주변에 생활이 어려운 분이 있으면 주민센터 직원과 상담하거나 동장을 찾아오면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안내를 한 뒤 훈련은 끝냈다. 벽에 걸린 시계는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주남 동장에게 물어봤다. “민방위 교육이 이렇게 단순하게 끝나는 게 정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늘은 비상소집 훈련이라 비상시를 가정해 주민센터에 집결만 하고 별다른 훈련은 없다”며 “그냥 돌아가기는 뭐 하니 항상 보여주던 지진 동영상을 틀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참여했던 다른 주민센터 비상소집 훈련도 안보 교육 영상과 지진 및 재난 대응 교육 영상을 약 30분 동안 보여준 뒤 교육을 끝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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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 민방위훈련에서 공습경보 15분, 경계경보 5분, 경보해제 순으로 발령됐다. 경보가 해재되자 시민들이 통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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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장에게 “전시에 피할 수 있는 비상대피소가 관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있냐”고 묻자 “지하철 보문역과 아파트 주차장 등 4개소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교육 내용은 서울시와 유관부처에서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 않고 동주민센터에서 재량으로 진행한다”며 “5년차 이상 훈련 대상자는 소집 훈련이 목적이고 1~4년차 대원은 별도의 민방위 훈련장에서 4시간 동안 자세한 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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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시 찾아야 할 대피소 위치는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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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는 주변의 급수시설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1~2분이면 주변에 위치한 대피소를 충분히 안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대피소로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1~4년차 민방위 대원도 대피소를 안내받지 않는다. 지난 7월 민방위 교육장을 다녀온 안 모씨(민방위 3년차 대원)는 “정훈교육 같은 안보 강연과 심장충격기 사용법을 배웠다”며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대피소는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직접 들어가 봐야 구체적인 대피소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택시 운전사 장 모씨는 “군 복무 32개월 끝낸 뒤 예비군ㆍ민방위 훈련을 다 수료했다”며 “그때도 민방위 훈련은 출석 부르러 참석할 뿐이었다”며 아쉬움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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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훈련에 소집된 대원은 교육 통지서에 확인을 받아야 참석 여부를 인정받을 수 있다. [사진 박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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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훈련은 왜 형식적으로 이뤄질까. 당국은 “민방위 환경 변화에 부합하는 합리적 제도 개선ㆍ발전”이라고 설명하지만 주민 편의에 최대한 맞추다 보니 훈련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정세 변화를 고려해 훈련 내용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이 발생하자 12월 민방위 훈련은 실전처럼 진행됐다. 서울 상공에 전투기가 저공으로 비행하며 굉음을 만들어 실제 상황처럼 느끼도록 했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실시하는 대규모 훈련에도 한계가 있다. 공무원과 일부 민방위 대원만 참여할 뿐 대다수 민방위 대원은 훈련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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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12월 전국적으로 민방위 특별대피훈련이 실시됐다. 부산 사상구 도로에서 민방위 요원들이 대피유도를 하고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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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훈련은 법적 근거에 따라 이뤄지는 의무사항이다. 40세까지 민방위 교육을 받아야 하며 4년차까지는 연 4시간, 5년차부터 비상소집훈련을 받는다. 불참할 경우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동장은 “간단한 비상소집 훈련이지만 이마저도 불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백 모씨는 “올해 민방위 교육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과태료를 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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