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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더,오래] 보스니아 시골길 과일 노점상서 산 석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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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채일의 캠핑카로 떠나는 유럽여행(9)

성모 발현 동산 인근 올리브 농장 사잇길

영화 '서편재'의 청산도 청보리밭길 빼닮아

'이름 모를 시골길 찾는 것도 여행의 묘미'

여행에서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모양이다. 쉬러 간 여행인데 또 무슨 휴식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때론 ‘안단테, 안단테’의 리듬으로 몸과 마음의 속도가 빨라지려는 것을 꾹꾹 눌러줘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을 떠나 올 때부터 이번 만큼은 느긋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하였건만 어느새 발걸음에는 나도 모르게 조급함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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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의 한적한 시골길 [사진 장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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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에서 3박 4일을 머물며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찾을 즈음 추억 속의 옛길을 발견했다. 성모 발현 동산에서 캠핑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포도밭 사이를 들어선 때였다. 서편제에 나오는 청산도 청보리밭 길이 이랬다. 영화 속 소리꾼 김명곤과 오정해가 북과 장구로 한 장단하며 동행해준다면 딱 좋을 것 같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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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의 한적한 시골길 [사진 장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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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라면 아내와 마음먹고 산행에 맛 붙이려 시작했던 연희동 안산 둘레길도 있고, 서울 성곽길이나 제주도의 올레길, 산티아고의 순례길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북한산 등산로나 능선의 모양이 공룡의 등뼈처럼 삐죽삐죽 치솟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설악산 공룡능선도 험하기는 하지만 길은 길이다. 주변엔 기괴한 암봉을 보면 심장이 마구 동요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전국 100대 명산을 모조리 밟고 다닌 친구도 있고, 주말마다 험로를 가지 않고는 좀 쑤셔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높고 험한 산길보다 이렇게 낮고 평탄한 길이 좋다. 며칠 전 이탈리아 산 조반니 로톤도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릴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양쪽으로 펼쳐진 끝없는 올리브 농장 사잇길을 달리며 가슴이 뻥 뚫리는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았다. “여보, 이 맛에 캠핑카 여행을 하나 봐~” 옆자리의 아내 표정도 편안하고 여유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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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의 한적한 시골길. 저멀리 과일 노점상이 보인다. [사진 장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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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낡은 폭스바겐을 좌판 삼아 과일을 파는 노점상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포도며, 말린 무화과, 서양 자두, 석류, 마늘 등이 빼곡하게 널려있다. 아내는 대뜸 석류를 집어 들었다. 세 개에 1유로이다. 맛은 둘째 치고 값이 너무 싸다. 꺼내 든 카메라에 노점상 아주머니가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는다. 아마도 햇볕에 까맣게 탄 피부가 신경 쓰였으리라. 여인의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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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의 한적한 시골길의 과일 노점상 [사진 장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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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또 다른 노점상이 보인다. 직접 손뜨개로 만든 식탁보와 앞치마 등을 길 둔덕에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낯선 여행자의 눈에 비친 보스니아 시골길의 모습이 따뜻하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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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의 한적한 시골길 [사진 장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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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꼭 유명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게 여행인가? 이렇게 이름 모를 시골길에서 느끼는 재미 또한 못지않네.” 나도 모르게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내와 둘이 캠핑장서 석류파티


이날 밤 캠핑카로 돌아와 아내와 석류들을 꺼내 놓고 마주 앉았다. “터키에 갔을 때도 석류가 너무 달고 맛있었는데, 이쪽 지방이 석류의 주산지가 아닌가 싶어요.” 아내의 말에 용기를 내어 석류 한 알을 쩍 가르니 붉은 석류 알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 움큼 입에 넣고 깨 물으니 달고 향기로운 석류즙이 입 안 가득 차오른다.

이날 밤 우리의 캠핑카에서는 때아닌 석류 파티가 벌어졌다. “아, 석류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네!” 석류 몇 알에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준비해간 화구를 풀어 석류 그림을 그려보았다. 캠핑카 선루프를 통해 올려다본 보스니아의 시골 마을의 맑은 밤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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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맛과 향을 마음에 간직하고자 준비해간 화구를 풀어 그린 석류그림 [그림 장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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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채일 스토리텔링 블로거 blog.naver.com/jangchai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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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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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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