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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태극기 → 러 3색기 → 오륜기 … 기구한 빅토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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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러시아 평창 출전 금지

오륜기 달고 개인 자격 참가 가능

안 “평창올림픽에는 꼭 나가겠다

내가 태어난 나라서 달리고 싶어”

3개 다른 국기 달고 쇼트트랙 출전

122년 올림픽 역사에서 드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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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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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


태극기, 트리콜로르(러시아 3색기), 그리고 … 오륜기.

‘쇼트트랙 천재’ 빅토르 안(32·러시아·한국명 안현수)은 자신의 스케이트 선수 평생 가슴에 3가지 서로 다른 국기를 달게 된다.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는 한국 국가대표 안현수로, 태극기를 달았다. 2014 소치올림픽에선 러시아 국가대표 빅토르 안으로, 트리콜로르를 달았다. 그리고 2018 평창올림픽에선 그 어느 나라도 대표하지 못한 채, 올림픽 참가 선수로 분류돼 오륜기를 달게 된다. 세 차례 올림픽에서 모두 다른 국기를 가슴에 다는 건, 올림픽 122년 역사에서도 드문 경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는 지난 6일 국가 주도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출전 금지를 결정했다. 단, 도핑테스트를 거쳐 문제가 없는 선수에 한해 개인 자격 출전을 허용했다. 지난 4일부터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 동료들과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에서 훈련 중인 빅토르 안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지난 4년을 준비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개인 자격으로라도 출전하고 싶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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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빅토르 안의 고민이 해결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한 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선수에 대해서) 어떤 봉쇄도 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원해서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다면 막지 않겠다”고 말했다. IOC 결정 직후, 러시아 일각에선 “IOC가 러시아를 모욕했다”며 올림픽 보이콧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러시아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길이 열렸다.

평창올림픽에 개인 자격으로 오는 러시아 선수의 경우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lympic Athlete from Russia·OAR)’라는 명칭으로 출전한다. 이들은 러시아 국가명과 국기가 박힌 유니폼 대신 ‘OAR’과 오륜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다. 이들이 금메달을 따면 시상식장에는 러시아 국기 대신 오륜기가 오르고,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된다. 메달 기록에도 러시아는 ‘0’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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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안은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선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땄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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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한체대 빙상장에서 빅토르 안 등 러시아 선수들을 만났다. 아직 개인 자격 출전 허용에 관한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이어서 말을 아꼈지만, 표정은 환했다. 전날보다 더 열심히 빙판을 지치며 구슬땀을 흘렸다. 안현수는 “IOC 발표 직후 러시아 내 분위기가 강경했지만,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다고 한다”며 “좋은 방향으로 결론 날 것이다. 팀에서도 ‘다른 신경 쓰지 말고 훈련에 전념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는 오는 12일 개별 종목 경기단체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평창올림픽 참가 관련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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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소치 대회에선 러시아 선수로 금메달을 따낸 뒤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중앙포토]


세 번째 올림픽 출전의 길은 열렸지만, ‘국가대표’로서 빅토르 안의 운명은 기구한 면이 있다. 2006 토리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3개(1000m·1500m·5000m계주), 동메달 1개(500m)를 따며 ‘쇼트트랙 제왕’에 등극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정상급 실력은 변함없었지만, 파벌싸움과 무릎 부상이 겹쳐 2010 밴쿠버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소속팀인 성남시청 빙상 팀이 해체됐다.

빅토르 안은 2011년 러시아 행을 결심했다. 그는 러시아 국적을 얻어도 한국 국적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국적법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 시민권을 얻으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러시아빙상경기연맹은 풍족한 지원과 은퇴 후 진로 보장까지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2014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500m·1000m·5000m 계주), 동메달 1개(1500m)를 ‘새 조국’ 러시아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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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창올림픽에선 아내 우나리씨(사진)와 딸 제인을 위해서 뛰겠다는 각오다. [우나리씨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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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은 빅토르 안을 ‘영웅’이라 불렀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그에게 ‘조국을 등진 배신자’라며 손가락질했다. 이번에 그가 “개인 자격으로라도 평창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하자, 다시 또 “국적을 도구로 이용한다”는 비난이 나왔다.

빅토르 안은 여전히 한국 선수들과 친하다. 지난 10월 한국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딸(제인·2)과 출연해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옛 조국’ 한국에서 선수 일생을 마치고 싶어한다. 원래 소치올림픽 이후 은퇴를 생각했다. 메달을 딸 만큼 몸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다. 30대 들어 체력이 달려 2017~18시즌 월드컵에선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평창올림픽에는 꼭 나가고 싶다.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내 딸이 보는 앞에서,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빅토르 안이 오륜기를 달고라도 올림픽에 나가려는 이유다.

박소영·김지한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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