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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삼성이 ‘가습기 살균제’ 파헤친 교수를 비판하고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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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팩트체크] 삼성 ‘감광액 위험’ 기사 반박 뜯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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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난달 30일 누리집 ‘삼성 뉴스룸’에 감광액 누출 위험 등 반도체 생산라인 안전 문제를 지적한 <한겨레> 기사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삼성 뉴스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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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감광액 실험한 백도명 교수 실명 반박
“백 교수가 발암물질 검출 재검증을 거절”


법원은 삼성전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실험과정 등 잘못 있다고 볼 근거 없어”


노동부 보고서도 삼성 주장과 다른 결론 내놔
“삼성은 내부 문제 노출 않으려는 문화 강해”


글로벌 거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산업보건학계에서 첫 손에 꼽히는 서울대의 한 노교수를 직접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누리집 ‘삼성 뉴스룸’에 <한겨레 ‘감광액 누출 ‘제2 황유미’ 만드나…’ 기사에 대해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한겨레>가 지난달 27일 보도한 < 기사에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삼성전자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려드린다”며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09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사용되는 감광액에서 벤젠을 검출한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한겨레>가 이를 인용한 것에 대해 “당시 연구를 이끌었던 백도명 교수는 (재검증을) 거절했으며, 2012년 행정소송 과정에서 법원이 백 교수에게 감광액 분석결과에 대한 데이터 제출을 요청했으나 백 교수 쪽은 ‘자료가 없다’며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감광액에서 1급 발암물질 벤젠 등이 검출되는 등 반도체 작업장 내 화학물질이 여전히 작업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기사의 신뢰를 깎아내리는 내용입니다. 삼성전자는 이밖에도 △감광액은 중대 유해물질이 아니라는 점 △감광액 유리병은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로 보호한다는 점 △근로자들이 화학물질 정보를 언제든지 볼 수 있게 라인에 비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주장했습니다.

삼성전자가 한 대학교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반박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백도명 교수는 한국환경보건학회 회장 및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을 지냈고, 최근에는 정부가 꾸린 폐손상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폐를 손상한다는 인과관계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 확인한 바 있는 연구자입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대학에서 석사,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백도명 교수는 국내 산업보건학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권위자입니다.

이런 백 교수 쪽 연구결과를 삼성전자가 극구 부인하고 나선 것입니다. 뒤집어보면 삼성전자 역시 권위자의 연구를 통해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된다는 사실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죠.

반올림 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삼성전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뒤 생긴 희귀질병에 대한 산재를 인정해달라고 황상기씨 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이미 삼성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2014년 8월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문엔 이렇게 나왔습니다.

“피고(근로복지공단)는 삼성전자에서 사용한 감광액에 벤젠이 포함되어 있다는 서울대 보고서는 실험의 오류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면서 삼성전자에 감광액을 공급한 업체들이 분석한 결과 및 삼성전자에서 감광액을 제공하여 한국화학연구원 등이 분석한 결과 등을 제출하고 있으나,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한국화학연구원 등이 분석한 시료가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고 볼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실험과정 등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볼 근거도 없으므로,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즉 앞서 삼성전자가 뉴스룸에 밝힌 “감광액이 위험하다는 증거로 이 조사(서울대)를 인용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주장은 법원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임자운 변호사는 “이 판결 이후 삼성이나 근로복지공단 모두 이 보고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다시 뉴스룸에 저런 글을 올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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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 교수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희귀질병에 대해 연구한 데 이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사회 이슈화한 ‘숨은 공로자’다.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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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명 교수는 삼성전자가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백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벤젠의 검출량이 높다, 낮다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유해물질이 과거에 사업장에 있을 수 있는데도 그동안 한번도 조사를 안했으니 해보라는 의미였다. 경각심을 주려는 것인데 삼성전자는 반박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또 삼성전자는 뉴스룸에서 ‘감광액은 중대 유해물질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제조사로부터 (위험한) 규제물질이 함유되지 않았다는 보증서를 받고 있으며, 자체 성분검사를 해서 중대유해물질이 검출될 경우 사용을 중단하는 프로세스를 시행중이라며 자신했습니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한 엔지니어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며 분노했습니다. 그는 “감광액은 감광제를 용매인 솔벤트에 녹인 물질이다. (현재) 규제되고 있는 것은 단일 솔벤트에 대한 것이고, 감광액에 따라 2개 이상의 솔벤트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함께 사용할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감광액 생산업체들이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물질들을 넣고 있는데, 정작 회사는 안전하다고 장담만 하면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6년에 낸 <전자제품 제조업 안전보건 실무 길잡이>에도 감광액 취급과정에서 벤젠 등에 노출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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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모습.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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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주요 반박 가운데 또 하나는 “작업자들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있으며, 작업자들은 안전 문제가 있거나 우려될 경우 온오프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본인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지난해까지 삼성 반도체에서 일한 한 노동자에게 물었습니다. “라인에서 일하는 게 위험할 수 있다고 위에다 문제제기한 적은 없습니까?” 그는 “간담회를 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감광액 등) 냄새가 심하다고 간부들에게 이야기하면, 간부들은 웃으면서 문제제기하는 것을 회피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단체생활이니까, 남들은 다 들어가서 일하는데 ‘너는 왜 안해’ 라고 찍힐 수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더구나 그동안 그룹 차원에서 전근대적인 무노조 원칙을 지킨다며 노동조합을 만드려는 노동자들을 회사 간부들이 납치하다시피 끌고다니며 회유한 사실이 여러차례에 걸쳐 드러났고 현재 사원 다수를 대표하는 노동조합도 없는 삼성전자가 하는 얘기치곤 궁색해 보입니다.

고용노동부가 2013년 5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실태를 진단한 <안전진단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회사의 안전보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외부 지적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의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근본적으로 개선과 발전에 상당히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음.” 삼성전자가 2017년에 내놓은 반박글의 태도와 내용을 보면, 2013년 고용노동부 보고서의 진단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요.

삼성전자는 마지막으로 “국내외의 기존 연구결과는 반도체 생산현장과 암 사망과의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근거없는 불안감 조장에 유감을 표한다”고 글을 맺었습니다. 이에 대해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직업환경전문의)는 “기본적으로 어떤 연구도 ‘연관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연관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연관성이 없다고 확인했다’고 호도하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삼성전자 외에 에스케이(SK)하이닉스나 엘지(LG)디스플레이 등 다른 기업들이 작업장에서 일하다 희귀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에게 지원과 보상을 하는 것도 ‘연관성’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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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선 반올림의 노숙농성이 790일 넘게 진행되고 있다. 김성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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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자사를 비판하는 기사에 억지 논리로 반박을 하기보단, 작업 현장과 학계의 목소리, 그리고 여전히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차디찬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에 좀더 신경을 쓰는 게 나을 듯합니다. 세계 정상의 대기업이 하는 제대로 된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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