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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비서 목소리는 왜 전부 '여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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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네이버 프렌즈'에게 남자 목소리를 내줄 수 없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같은 질문을 '카카오 미니'에게도 던졌다. 그러자 여자가 ‘흉내’내는 남자 목소리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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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의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 미니'와 네이버의 인공지능 스피커 '네이버 프렌즈'. 사진 = 카카오, 네이버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의 성공 이후 국내 IT 업체들이 인공지능 비서 기능이 있는 스피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카톡을 보낼 수 있는 카카오 미니’.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네이버 프렌즈’. ‘TV를 비롯한 전자제품과 연동되는 KT 기가지니’. 각 기업이 출시한 스피커들은 서로 다른 특장점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옵션을 뽐내는 인공지능 스피커 사이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디폴트 값’도 있다. 바로 ‘밝고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다. 다양한 기능과 조건, 디자인을 골라 선택할 수 있어도 남자 목소리로 안내 해주는 인공지능 스피커만큼은 찾기가 힘들다. 왜 인공지능 비서들의 성별은 ‘여성’으로 고정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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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비서 코타나. 사진 =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 비서로 ‘여성’의 목소리와 캐릭터를 선호하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인공지능 비서의 조상 급인 아마존의 ‘알렉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 등은 이름부터 목소리까지 모두 여성의 것이었다.

미국의 IT 매체인 ‘긱 와이어’는 이런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게재한 바 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인공지능 비서가 여성인 이유는 ‘서비스’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성적 대상화’ 때문이거나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세 가지가 전부 원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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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 '엑스 마키나'


워싱턴대 여성학과 미셸 하벨 팔란 교수는 인공지능 중 ‘비서’ 역할을 맡은 것들만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퀴즈쇼에서 인간과 겨뤘던 IBM의 ‘왓슨’, 미국의 로펌이 도입한 최초의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공지능은 남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셸 교수는 이런 현상을 지적하며 “인공지능 비서에 여성성을 부여하는 것은 나쁜 뜻은 없더라도 중대한 함의를 담고 있다. 성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문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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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사진 = 뉴시스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국내 인공지능 산업의 발전 흐름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국내 학자들도 적지 않다. 뇌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달 7일 한 특강에서 “현재 인류의 권력 구조가 비판의식 없이 휴머노이드에도 반영되어 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라며 여성이 할 법한 일을 대신하는 로봇을 여성 캐릭터화 하거나, 공장에서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에 남자 이름을 붙이는 현상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내에서 발매된 인공지능 스피커의 목소리가 모두 여성인 것을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의사 결정자인 개발자들이 주로 남자라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며 짧게 원인을 분석했다. 슬프게도, 남성의 목소리를 배우지 못한 인공지능 스피커는 우리 사회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더 고착시키고 있다.

한편, 세계의 컴퓨터 과학자와 IT 리더들은 인공지능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성적 편향성’이 줄어들 것이라 말한다. 앞으로의 인공지능 기술은 ‘개인화’ 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구글 같은 회사들은 의도적으로 인공지능에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목소리 역시 컴퓨터 음성을 채택해 성별이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아란 기자 aranciat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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