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르포] 지진 10일째 몸과 마음 지쳐…대피소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붕괴 우려 포항 대성아파트 일부 주민 새 둥지로…이주 계획 등 놓고 의견 엇갈려

연합뉴스

대피소 이재민
(포항=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21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한 임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짐을 옮기고 있다. 2017.11.21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장기간 집을 떠나있으니 좋을 수가 있겠능교? 감기 때문에 몸도 안 좋니더. 무엇보다도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니 그게 제일 큰 걱정 아니겠능교."

24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체육관에서 만난 한 50대 여성 이재민은 이같이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나고 만 9일이 지나 어느덧 10일째로 접어들었다. 이재민들은 몸과 마음이 피로에 지쳐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간밤에 포항에서는 여진이 2회 발생했다. 23일 오후 11시 27분과 24일 오전 1시 17분에 각각 규모 2.3 지진이 일어나 이재민을 다시 한 번 잠 못 이루게 했다.

이모(59·여)씨는 "조그마한 소리나 진동만 나도 놀라는 등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밤사이 또 그러니 놀라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흥해체육관에는 이재민 사생활 보호를 위한 텐트를 설치했다.

이재민과 지원기관 관계자만 체육관에 드나들 수 있도록 해 발생 초기와 같은 혼잡함을 없앴다.

체육관 앞에 혼잡하게 서 있던 봉사기관 천막도 정리했다.

여러 민간단체는 이재민이 밥이나 간식 등으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꾸준히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포항지역자활센터는 세탁기를 동원해 무료로 이재민 빨래를 해주고 있다.

그렇더라도 집단으로 모여 사는 체육관이 집만큼 편할 수는 없다.

아직 이주할 곳을 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 요인이다.

흥해읍 대성아파트 주민 23가구는 이날 집에서 짐을 챙겨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대아파트인 장량동 휴먼시아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다른 이재민이 채웠다.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흥해체육관을 방문하자 이재민은 주거지 안정을 위한 여러 가지를 건의했다.

일부 주민은 대통령이 너무 늦게 왔다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대통령이 찾아온 데 반기는 모습이었다.

연합뉴스

"이주기간 보장해달라"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24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에 주민 일동 이름으로 쓴 '재개발 완료시까지 이주기간 보장해주세요'란 현수막이 붙어 있다. 2017.11.24



진앙과 가까워 지진 피해가 크게 난 흥해읍 대성아파트 가운데 일부인 170가구 주민은 임시로 머물 집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대성아파트 주민은 24일 이사한 이재민처럼 하루라도 빨리 임대아파트로 옮겨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러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는 것도 순서를 기다려야 해서 뒷순위로 밀린 주민은 불만을 나타냈다.

한 이재민은 "나는 남구 쪽 임대아파트에 가려고 하는데 아직 청소도 해야 하고 도배도 해야 한다면서 기다리라고 한다"며 "장애인 등이 먼저 이주할 수 있도록 한다지만 뚜렷한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불평했다.

전세금 지원을 신청한 주민은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정해지지 않아 막막한 상황이다.

임대아파트로 이사하는 주민은 2년까지 살 수 있고, 전셋집을 구해 이사하는 주민은 1억원까지 전세금과 월세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한 주민은 "이재민이 갑자기 많아지니까 포항 시내에 전세 물량이 부족하다거나 전세금이 올랐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며 "앞으로 집도 구하러 다녀야 해서 갑갑한 노릇이다"고 설명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도 생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이웃 아파트단지 주민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성아파트 주민은 전체 아파트를 철거하고서 재건축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전체 6개 동 가운데 피해가 심한 E동만 철거하기로 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 대성아파트 주민은 "아직 철거나 재건축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이주부터 한다"며 이사한 주민에게 눈총을 보낸다.

한 할아버지는 "주민 뜻을 모은 뒤에 가야지 이사부터 하면 어떡하느냐"며 "이런 식으로 흩어져서는 아무런 결론을 끌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성아파트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한미장관맨션 주민은 대성아파트 주민에게 지원이 집중되는 데 불만을 나타냈다.

한미장관맨션 한 주민은 "우리 아파트도 여기저기 균열이 심하게 가고 바닥이 갈라지고 문이 안 닫힐 정도로 집이 비틀어졌다"며 "포항시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불안에 떨고 있고 체육관 대피소 입주에도 뒷순위로 밀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한미장관맨션 주민은 아직 대성아파트 재건축 결정이 나지 않았음에도 "우리도 지진 피해가 큰 만큼 대성아파트와 함께 재건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대성아파트 한 주민은 "별로 피해도 없는 한미장관맨션 주민이 우리보다 더 나서서 떠든다"며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sds123@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