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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Science &] 무덤 뚫고나온 좀비 실재했었다? 독성물질로 뇌가 환각에 빠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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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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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없는 눈동자, 흐느적거리는 팔과 다리 움직임. 몸을 사방으로 꺾으면서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한다. 그렇다. 공포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좀비 얘기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좀비가 최근 서울에 출몰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한 베트남인이 '좀비'와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인터넷상에서 한바탕 커다란 소동이 벌어졌다. 이 베트남인이 새벽에 한 가정집에 유리창을 깨고 침입한 뒤 60대 남성과 70대 여성을 차례로 물었다고 한다. 피해를 당한 남성은 "가해자의 모습이 영화 부산행에서 나온 좀비와 똑같았다"며 악몽과 같은 시간을 회고했다. 인터넷상에서 이 베트남인이 좀비마약으로 알려진 '배스솔트'를 투여했다는 분석이 나왔고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나서서 "한국에는 좀비 마약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등장한 베트남인은 좀비와 같은 행동을 보였을 뿐 실제 좀비는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망한 뒤 묻혔다가 무덤을 파헤치고 나온 좀비가 존재할까. 놀랍게도 1980년대 카리브해 아이티에서는 수차례 좀비가 목격됐고 외신이 이를 크게 다루는 상황이 연출됐다. 좀비 출몰소식이 전해지자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과학자들이 아이티로 향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1980년, 아이티의 한 마을에서 나타게프 조제프라는 60세 여인이 발견됐다. 그녀는 1966년 사망 판정을 받고 무덤에 묻혔던 사람이었다. 1976년 2월 23일 30세의 나이로 공식 사망한 티팜이라는 여성도 1980년 발견됐다고 한다. 그녀가 묻혔던 관을 파헤쳐보니 돌만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죽은 자의 부활(?), 좀비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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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영화 속에서 나온 좀비와는 달랐다. 무덤을 파고 나온 것은 맞지만 말을 할 줄 알았고 인지능력도 갖고 있었다. 1962년 사망 판정을 받은 뒤 1980년 나타난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뒤 1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르시스는 "토지 문제로 다퉜던 형이 나를 좀비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좀비가 된 지 2년 동안 노예로 일하다가 16년을 배회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영국 BBC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난 뒤 미국, 유럽에서 좀비는 큰 이슈가 됐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좀비로 취급받았던 것일까. 과학자들은 과학지식을 총동원해 좀비 미스터리를 풀었다. 정신과 의사이자 향정신성 약물 전문가인 네이선 클라인 박사와 하인츠 리먼 박사는 아이티에서 나타난 좀비가 특정 약물에 중독된 것으로 판단했다. 아이티의 부두교 주술사들이 자신들이 만든 '마법의 가루'를 사람에게 묻혀 일시적으로 죽은 것처럼 만들었다. 이후 관에서 가사 상태에 있던 시체(?)를 꺼내 살려낸 것처럼 꾸며낸 것이다.

가사 상태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주술사들은 또 다른 형태의 마법의 가루를 투여했고 이로 인해 인지능력 등이 떨어진 사람들이 좀비처럼 농장으로 팔려가 노예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웨이드 데이비스 하버드대 박사는 '마법의 가루'를 얻기 위해 아이티 주술사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분석 결과 첫 번째 마법의 가루, 즉 사람을 가사 상태로 만드는 데 쓰였던 '물질'에서 치명적인 신경독으로 알려진 복어독이 발견됐다. '테트로도톡신'으로 알려진 독약이었다. 테트로도톡신은 코카인보다 16만배나 유해하고 청산가리보다 500배나 독성이 강한 독성물질이다. 테트로도톡신을 섭취한 사람들은 급격한 체중 저하, 호흡 곤란, 폐부종, 사지 마비 등을 일으켰다. 심하면 뇌사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테트로도톡신에 감염된 사람 중 생리 기능이 극도로 저하되면서 마치 죽은 것과 같은 '가사 상태'에 빠졌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는 사례가 자주 보고됐다는 점이다.

데이비스 박사가 남긴 저서 '나는 좀비를 만났다'에는 한국 사례도 등장한다. 한국 광부의 아들이 복어독을 먹고 병원으로 실려온 뒤 사지가 마비됐지만 두 시간 뒤 깨어나 걸어서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데이비스 박사는 "복어독에 감염된 사람이 가사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죽었다고 판단, 무덤에 묻고 장례를 치렀다"며 "이후 부두교 주술사가 무덤에서 이들을 꺼냈다"고 말했다. 실제 죽은 것이 아니라 가사 상태에 빠진 것을 사람들이 착각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가사 상태에 빠진 사람을 회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주술사들은 복어독을 투여해 가사 상태에 빠뜨린 뒤 2~3일이 지난 뒤 무덤을 파 관을 꺼냈다. 이후 가사 상태에 빠진 사람을 깨어나게 한 뒤 일종의 주술의식과 같은 굿판을 벌인 뒤 두 번째 가루약을 투여했다. 아이티 좀비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번째 가루는 환각 증상과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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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15일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데이비스 박사의 `좀비` 논문.


이 가루약 때문에 심신이 피폐해진 좀비들은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거나 다른 일터로 팔려갔다. 그 과정에서 탈출에 성공한 좀비(?)들이 정신을 차려 가족들을 찾아간 것이다. 데이비스 박사는 두 번째 가루약에서 독말풀과 함께 독거미로 알려진 타란툴라의 독을 발견했다. 마약과 같은 향정신성 물질이었다.

최근 남미·영미권을 중심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좀비마약 역시 향정신성 물질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 국가약물남용연구소에 따르면 이 같은 향정신성물질은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이 정상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을 방해해 뇌에 '비정상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리화나, 헤로인과 같은 물질의 화학구조는 뇌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과 비슷한 모양새를 띠고 있어 뉴런에 잘 달라붙는다. '가짜 신경전달물질'이 뉴런에 달라붙으면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거나 환각 증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쨌든 아이티 좀비는 무덤을 박차고 나온 것이 아니라 복어독과 독말풀을 이용한 눈속임이 만들어낸 아이티의 비극이었다. 데이비스 박사는 이 같은 연구결과를 1988년 4월 15일 저명한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좀비를 과학으로 설명한 데이비스 박사 논문은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후속 연구들이 발표되면서 좀비 미스터리는 결국 과학으로 풀리게 됐다.

이후 과학자들은 사람을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하려면 테트로도톡신이 1.1㎍(마이크로그램·1㎍은 100만분의 1g)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복어독 1g에는 64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의 테트로도톡신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잔인한 부두교 주술사들은 순진한 아이티 주민들을 상대로 일종의 속임수를 통해 권력과 돈을 갈취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교회 중심의 천동설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작용했듯 데이비스 박사 논문은 미신에 고통받던 아이티 주민들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데 도움을 줬는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좀비 현상
고양이 앞에서도 겁 안낸다면…'좀비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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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뜯어 먹는 무서운 좀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일은 자연계에서 비일비재하다.

타이 남부 열대림에 사는 개미는 좀처럼 나무를 내려오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길만 고집스럽게 선택하는데, 가끔 개미 한두 마리가 비틀거리며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 나무에서 내려온 뒤 나뭇잎을 물고 죽음에 이르는 사례가 발견됐다. 1859년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 이론을 발견한 알프레드 윌리스 박사가 발견한 이 현상은 10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러다 2011년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이 이 비밀을 밝혀냈다. '좀비 개미'였다.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BMC 에콜로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오피오코르디세프스'라는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술에 취한 듯 나뭇잎 사이를 헤매다가 잎맥에 매달려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미가 목숨을 잃은 이유는 곰팡이 때문이었다. 오피오코르디세프스 곰팡이가 개미 몸에 달라붙은 뒤 뇌에 침투해 포자를 잔뜩 번식시키면 개미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미뿐만이 아니었다. 귀뚜라미와 거미 등에도 달라붙어 이 같은 행동을 유도했다. 곰팡이를 미개한 생물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다. 뇌에 달라붙은 포자는 곤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곰팡이 포자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지역으로 퍼져야만 또 다른 곤충에게 기생하면서 번식해 갈 수 있다. 곰팡이가 선택한 장소는 바로 나뭇잎. 연구진은 "뇌에 가득 찬 포자는 나뭇잎에 다다랐을 때 곤충의 몸을 뚫고 사방으로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오피오코르디세프스에 감염된 곤충은 자신이 왜 나뭇잎으로 움직이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음에 이르고 만다"고 설명했다.

기생충도 있다. 란셋흡충의 애벌레는 개미 몸속에서 기생한다. 이 기생충은 알을 낳기 위해 초식동물 몸속에 들어가야만 한다. 란셋흡충은 숙주인 개미의 두뇌를 조종해 밤이 됐을 때 풀잎에 가만히 있도록 한다. 놀랍게도 낮에는 개미를 조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미가 따가운 햇볕 아래 가만히 있으면 포식자에게 먹히기 전에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뇌를 조종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생충도 있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포식자인 고양이가 나타나도 도망가지 않는다. 잡아먹힐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정자세를 유지한다. 고양이 몸속에 들어가 번식한 톡소포자충이 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양이에게 전달된 톡소포자충이 인간에게 전달되면 신경계 손상은 물론 뇌수종이나 실명을 일으키기도 한다.

버섯 포자가 곤충들의 뇌를 조종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미국 아칸소대 연구진이 학술지 '무척추동물 병리학 저널'에 발표한 최근 논문에 따르면 '에리니옵시스 람피리다룸'이란 균류가 '병대벌레'를 감염시켜 꽃잎에서 죽게 만든다고 밝혔다. 특히 병대벌레는 죽을 때 날개를 펼치는 모습이 발견됐는데 연구진은 "버섯이 포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날개를 펼치고 있으면 짝짓기를 원하는 줄 알고 다른 병대벌레가 달라붙는다. 이 과정에서 포자는 다른 병대벌레로 옮겨 번식해 세대를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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