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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뉴스분석] 페이스북 차단되고 아프리카TV 라이브 못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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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망중립성 원칙' 폐지 논의 본격화

통신사-플랫폼 사업자 간 갈등 커지면

페북·네이버 등 이용 속도 느려지거나

같은 속도로 쓰려면 요금 더 내야 할 수도

중앙일보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사진처럼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트 플랫폼을 접속할 때 속도가 느려지거나 차단될 가능성도 있다.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ISP 사업자들이 데이터를 많이 잡아먹는 플랫폼에 대해 차별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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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민철 씨는 퇴근길에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었다. 국내에서 1000만 명 이상 사용한다는 이 앱은 어느 날부터 접속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친구가 여행 가서 올린 동영상을 클릭하니 영상은 계속 끊기고 화면이 깨졌다. 김 씨는 귀가 후 컴퓨터로 '쿡방'(요리하는 방송)을 라이브로 보여주는 영상 플랫폼을 틀었다. 그러나 방송 화면은 5분 정도 나오다가 정지됐다. '영상을 보고 싶으면 월 이용료 9900원을 더 내라'는 메시지가 떴다.

앞으로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영상 플랫폼과 소셜미디어가 유료로 바뀌거나 서비스 품질이 크게 저하될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하기로 결정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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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왼쪽 화면처럼 접속이 차단되거나 유료로 돈을 내고 사이트에 접속해야 할 수도 있다. [사진 마켓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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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중립성 원칙이란 통신망(네트워크) 사업자(ISP)들이 통신망을 타고 제공 되는 서비스와 콘텐트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이동통신사가 거액을 들여 망을 깔지만, 이 망을 누구나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다. 2015년 전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인터넷망을 공공재로 간주하며 망 중립성 정책을 세웠다. 국내 대표적인 ISP는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가 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최근 이 원칙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와도 같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다음달 14일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하는 안을 최종 표결에 부친다. FCC 위원 대다수가 여권 공화당 인사라는 점에서 폐기안은 이견 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망 중립에 관한 미국의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된다. 국내 이통사업자는 물론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이를 주목하는 이유다.

망 중립성 원칙은 콘텐트를 기반으로 한 각종 멀티플랫폼 기업들이 수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바탕이 됐다. 페이스북·구글·넷플릭스 같은 해외 기업부터 네이버·카카오 같은 국내 IT 기업들 모두 이미지·동영상 멀티미디어 콘텐트를 제공하면서 입지를 넓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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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망 중립성 원칙 폐지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사진은 사용자들에게 망 중립성 원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트위터 포스트.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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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중립성의 폐지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의 접속을 제한하거나 속도를 느리게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으로 사진이나 영상 같은 대용량 파일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아질 수 있다.

이 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통신망 건설과 유지·보수에 대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가 걸려있다. 과거 네트워크 사업자(이동통신사)들이 통신요금만으로도 큰 돈을 벌던 시절에는 이 비용을 통신사가 전액 부담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고 큰 돈을 벌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ISP들이 통신망 이용 대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망중립성 원칙이 폐지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에서는 벌써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케이블 TV 업체들이 넷플릭스에 수수료를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넷플릭스가 수수료 지불을 거부하기란 매우 어렵다. 망 사업자들에게 서비스 속도 제어라는 무기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ISP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간에 수수료 협상은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협상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데이터 이용 속도가 느려지고, 협상이 잘 진행될 경우라도 통신망 사용료가 전가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동통신사들의 요금제도 크게 바뀔 가능성도 크다. 월정액 요금제가 아닌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종량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글만 올리거나 동영상을 보지 않는 '텍스트형' 요금, 고화질 동영상을 많이 보는 이들을 위한 고액의 '비디오형' 요금제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통신요금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사업확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통신과 방송 등 여러 분야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어서다. 국내 통신사가 비디오 콘텐트·플랫폼을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고, 반대로 비슷한 사업을 하는 경쟁사 플랫폼에 대한 접속 속도를 낮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 글로벌 추세에 맞춰 망 중립성 원칙이 담긴 지침이 시행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지난 8월 이 같은 원칙을 오히려 강화하는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안을 제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ICT 비즈니스 환경이 크게 변하면 국내에서도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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