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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friday] 일본 엄마의 '지진 팁'… 식량보다 기저귀·생리대 먼저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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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리와 오누키의 friday talk]

조선일보

몇 주 전 대화 도중에 오누키 특파원이 걸려온 전화를 다급히 받았습니다. 아들 다니는 일본인 학교에서 일 년에 두 번 하는 '긴급 하교 훈련'이었습니다. 지진에 대비한 훈련인데, 매뉴얼 따라 학부모 비상 연락망 순서대로 다음 아이 엄마에게 전화해 지침을 전달하는 거랍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사람들 보기엔 이런 거까지 하나 싶을 거다" 하는 오누키 특파원 말에 김 기자는 내심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지진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지금, 김 기자 머릿속엔 미련해 보였던 그 훈련이 자꾸만 맴돕니다. 김 기자의 고향은 포항입니다.

김미리(이하 김): 지난주 수요일, 사무실에 재난 문자 소리가 일제히 울리는데 누군가 외치는 거예요. '어떡해! 포항에 지진 났대!' 하늘이 노래지더군요. 부모님께 전화드리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광화문 사무실이 휘청했어요. 전화는 먹통이라 부모님하고 연락은 안 되고.

오누키(이하 오): 저도 사무실에 있었어요. 문자가 왔는데 한파 주의보겠거니 싶어 안 봤어요. 그러곤 바로 진동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국장하고 동시에 말했어요. "어, 지진이네!" 반사적으로 흔들리는 시간을 쟀어요. 10초 정도 흔들리고 잠잠해지더군요. 큰 건 아니다 싶었어요.

: 아찔하지 않던가요?

: 전혀요. '좀 흔들리네' 정도였는데 같은 사무실 한국 직원은 너무 당황하더라고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라면서.

: 부모님 사시는 아파트는 별 피해가 없다는데도 여전히 불안해요. 첫날 밤은 악몽이었죠. 피하시긴 해야 하는데 어디로 가시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차 안에서 주무신다는데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오누키 상에게 급히 문자 드렸어요.

: 제가 진동 느껴지면 일단 탁자 밑으로 피신하시라 했지요.

: 그 말씀 전해 드렸더니 부모님이 그러세요. "세상 흔들려 봐라. 탁자 아래 들어갈 정신이 어디 있니.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가게 되더라."

: 탁자 아래로 들어가라는 건 머리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한창 흔들릴 때 뛰쳐나오면 부서진 건물 잔해나 물건에 머리 다치기 십상이에요. 허겁지겁 나오다 넘어져 다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 그나마 포항은 지난해 경주 지진을 경험해 학습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작년 경주 지진 났을 때 어머니께서 하늘이 갈라지는 줄 알았대요. 천둥소리 몇 배는 되는 굉음이 나서. 이번에도 굉음이 들려 지진이란 걸 직감했대요. 저는 땅이 흔들리는 것만 생각했지 큰 소리가 나는 건 몰랐거든요.

: 어린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물, 기저귀, 생리대를 꼭 두세요. 일본에선 2L짜리 생수 6병 정도는 비상용으로 두라고들 해요. 대피소 가면 음식은 그나마 해결되는데 기저귀, 생리대는 우선 지급품이 아니어서 의외로 고생할 때가 많대요. 저도 동일본 대지진 때 아이가 어려 현관에 기저귀 한 팩을 두고 여진에 대비했어요.

: 요즘 아침에 눈 뜨면 포털에 '여진'이라는 키워드부터 쳐봐요. 서울 사무실도 자꾸만 흔들리는 것 같은데, 그쪽 분들은 오죽할까요.

: 저는 지진이 바로 수능 이슈로 연결되는 게 신기했어요. 첫날 뉴스 보니 당장 집 잃고 대피소로 나와 추위에 떠는 이재민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부터 조명하는 게 순리일 텐데 수능 얘기부터 나오더라고요. 생명이 걸린 문제에 집중해야 할 판에 수능 연기로 수험생들의 성형 수술, 해외여행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다는 화제성 뉴스를 앞다퉈 다루는 것도 아니다 싶었어요.

: 일본이라면 어땠을까요? 입시 철에도 지진은 날 텐데요.

: 원칙에 따라 피해 지역만 미뤘을 거예요. 한국은 형평성이 중요한 나라라 예외를 두는 데 반발할 것 같은데, 일본에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들 수긍해요.

: 졸업 후 한 번도 찾은 적 없는 모교가 방송 카메라에 비치더군요. 외벽에 금 가고 화장실 부서진 채.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요.

: 고베 대지진(1995년 1월 17일)이 일어난 해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센터시험'이 지진 직전인 14~15일에 치러졌어요. 일본에선 센터시험보다 직후에 대학별로 치르는 2차 시험이 더 중요한데 그쪽 지역 학교들은 일정을 조금씩 조정했어요. 진앙 근처에 지역 명문고가 하나 있었어요. 수업은 고사하고 그 학교가 희생자들 안치하는 곳으로 쓰여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해 그 학교 명문대 진학률이 예년과 차이가 없었대요. 포항의 수험생들도 좋은 결과 얻기를!

※한국과 일본의 닮은꼴 워킹맘 기자






[김미리 'friday' 섹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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