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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시아계라 美명문대 불합격? 대나무 천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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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점짜리 중국계 학생도 탈락… 美 법무부, 하버드대 조사나서]

- '소수인종 우대 정책'의 역설

입학생 인종 다양성 위해 출신국별 정원 할당한 제도

더 많은 아시아계 입학 가능한데 정원 할당으로 오히려 역차별

미국 플로리다주(州) 올랜도 출신의 중국계 미국인 학생 휴버트 자오(19)는 지난해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인 코넬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 지원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휴버트의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만점(GPA 5.3점)이었으며, 수능시험과 같은 SAT와 PSAT에서도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얻었다. 세계 로봇 학생 대회에 참가하는 등 대외 활동도 열심히 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성적이지만 아이비리그에는 먹히지 않았다.

휴버트의 아버지인 유콩 자오 '아시아계미국인교육연합(AACE)' 회장은 "휴버트는 아이비리그 입학 과정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이 겪고 있는 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성적이 우수한데도 '소수 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따른 아시아계 입학생 수 제한에 걸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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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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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미 명문 대학들이 입학 과정에서 실시하는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이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64개 아시아계 학생 단체가 모여 만든 AACE는 하버드대, 코넬대, 컬럼비아대 등 명문 대학이 입학생 선별 과정에서 소수 인종 우대 정책에 따라 일정 비율 이상의 아시아계 학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입학생의 인종 다양성을 위해 출신국별 정원 할당을 두는 이 제도가 성적이 우수한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미국 법무부 인권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지난 17일 하버드대 법무팀에 '소수 인종 우대 정책과 관련한 문건을 빨리 제출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법무부는 지난달 하버드 측에 소수 인종 우대정책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은 "요청받은 자료는 학생들의 지원서와 성적표 등 개인 정보"라며 제출 마감 시한인 지난 2일까지 아무런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법무부가 이메일에서 자료 제출 시한을 다음 달 2일로 명기하면서 "제출하지 않으면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법무부의 으름장에 하버드는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법무부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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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무부의 이번 조사는 AACE가 지난 2015년 제기한 행정 개입 청원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하버드대학이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통해 아시아인을 역차별하고 있다"며 정부에 조사를 요구했다. 민간단체 '평등한 입학 절차를 지지하는 학생 모임(SFA)'도 지난 2014년 하버드대를 상대로 "아시아계 합격자 수에 제한을 둬 의도적으로 아시아계 학생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내용의 소송을 했다. 이 소송은 법원에 계류 중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현재 전체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생의 20%가량이 아시아계 학생인데, 고등학교 성적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많은 학생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나무 천장'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계속된다고 SCMP는 전했다. 아시아계 직장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에서도 평직원의 아시아인 비율은 47%에 달하지만 경영진에서는 25%로 떨어진다.

아시아계인 버크 지 전 시스코시스템 부회장은 SCMP 인터뷰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아시아인들의 숫자는 적어진다"며 "미국 전체 사기업에서도 경영진에는 아시아인의 비율이 5%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반론도 많다. 아이비리그 입학 컨설턴트인 베브 테일러씨는 지난 4월 허핑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휴버트 자오 학생의 경우 대외 활동과 수상 경력에 눈에 띄는 점이 없고, GPA 만점은 아이비리그 합격생들에 일반적인 것"이라며 "몇몇 개별 사례를 가지고 아시아계 학생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억지"라고 했다.

아시아계미국인협회(AAF)의 조안 유 이사는 지난 8월 포천지 기고문을 통해 "1960년대 초기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소수 인종 우대 정책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며 "다양한 인종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 국적이나 아시아계 이민자의 고위직 상승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에 아시아의 상징인 대나무를 조합해 만든 용어이다.

[김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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