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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인권 팽개쳐진 현장실습 뒤엔…MB·박근혜 ‘취업률 성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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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MB때 참여정부 ‘정상화 대책’ 폐기

취업률 목표치 제시 예산 차등지원

박근혜땐 2학기부터 ‘조기 실습’



한겨레

제주에서 현장실습에 나간 특성화고 학생이 사고 열흘 만에 숨진 지난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을 비롯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회원들이 추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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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숨진 이민호군의 죽음은 교육과 노동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이군은 하루 12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정규 직원이 맡아야 할 위험한 업무를 홀로 감당해야 했다. 이런 현장실습 관행이 기승을 부리게 된 배경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취업률 중심의 지표 관리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업계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건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산업교육진흥법을 개정하면서부터였다. 이전까지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조에 의한 실습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규정을 두고 있던 것을 ‘산업보국’ 이념에 따라 모든 실업계고에 의무화한 것이다. 그러나 실업계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은 점차 열악한 산업현장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현장실습을 교육과정으로 복원시키려는 노력은 참여정부 때 시작됐다. 2006년 5월 발표한 ‘실업계고교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 방안은 3학년 2학기 수업을 3분의 2 이상 이수하고, 졸업 뒤 취업이 보장된 경우에만 현장실습을 보낼 수 있도록 못박았다. “현장실습은 이후 정규직 고용의 수습 기간”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단기 파견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차단한 것이다. 정상화 방안은 현장실습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으로 교육계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상황은 급변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4월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포함한 29개 정책을 ‘즉시폐기 지침’으로 분류해 없애버렸다. 현장실습의 위험성을 차단할 수 있었던 제도적 장치를 ‘학교 자율’이라는 명목으로 폐기한 셈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실업계고를 특성화고로 전환시키면서 2011년 25%, 2012년 37%, 2013년 60% 등 취업률 목표치까지 제시했다. 취업률에 따라 지원금을 달리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학교는 통폐합시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일부 특성화고를 마이스터고로 지정하면서 예산 차등 지원을 현실화했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취업률이 높은 마이스터고는 학교당 평균 82억여원을 지원받은 반면, 특성화고는 36억여원에 그쳤다. 학교들 간의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숫자 중심의 성과관리가 교육현장에 적용되면서 저임금·단순 직종을 중심으로 한 아르바이트성 현장실습 등 각종 부작용이 되살아났다는 평가가 많다. 김경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은 “특히 취업률을 교장과 교사의 성과급에 반영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장실습에 대한 질적 관리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방향을 돌려놓자, 박근혜 정부는 속도를 높였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8월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을 도입해 3학년 1학기에도 현장실습을 보낼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전국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종합고(직업반)의 83.8%에 이르는 522개 학교가 2학기 이전에 1만6237명을 현장실습으로 내보냈다. 박근혜 정부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를 신설하기도 했다. 숫제 2학년 1학기부터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직업훈련을 받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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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조기 취업 정책이 ‘질 낮은 취업’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교육부가 작성한 ‘2013~2015년 고등학교 취업률 통계’를 보면 취업률은 2013년 44.9%에서 지난해 47.3%로 2.4%포인트 높아졌지만, 4대 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오히려 30.4%에서 26.4%로 4%포인트 낮아졌다. 배경내 ‘인권연구소 들’ 활동가는 “현장실습 제도 자체에 부실한 현장지도 등 취약점이 있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 학교가 취업률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제도적 한계가 본격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노무사는 “이명박 정부 이후 특성화고가 취업률 전쟁에 접어들었다. 다양한 진로를 스스로 모색하도록 해야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이민호군 사망 사건에 대해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교육부와 합동 점검을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미향 신지민 박태우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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