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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양손 엄지 지문 닳도록 그리고 또 그려 … 삶 자체로 장애인 편견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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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자폐 2급 화가 한부열씨

중앙일보

컬처디자이너의 선한 영향력이 세상을 바꾼다. 자폐 2급 장애를 딛고 프로 화가로 자리 잡은 한부열씨와 그의 어머니 임경신씨. 뒤에 걸린 그림이 한씨의 작품이다.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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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2급 장애인 화가 한부열(34) 작가는 양손 엄지손가락에 지문이 없다. 왼손으로는 30㎝ 자를, 오른손으로는 펜을 잡고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느라 지문이 닳아 없어졌다. 그는 곡선과 직선이 혼합된 독특한 화풍의 그림을 그린다. 그동안 완성한 작품은 모두 270여 점. 2014년부터 15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삶 자체로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고 있는 그를 20일 만나 인터뷰했다. 세 살 때 자폐성 장애진단을 받은 작가 대신 평생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해 온 그의 어머니 임경신(60)씨가 답을 했다.

한 작가는 어려서부터 늘 종이 위에 올라앉아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크레파스와 사인펜 등을 받을 때 가장 행복했다. 초등 5학년 때 처음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국제학교 교장선생님에게서다. “관점이 남다르고 색감이 선명하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정규 미술교육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시기는 2002∼2013년 중국 칭다오에 머무를 때였다. “남편이 칭다오에서 사업을 하면서 온 가족이 그곳에 정착하게 됐죠. 부열이가 고1 나이였는데, 다닐 학교가 없었어요. 하루종일 집에서 그림 그리는 생활이 11년 동안 계속됐습니다.”(임)

한 작가는 정리정돈을 잘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성격이다. 그림에도 그런 특성이 묻어난다. 선을 반듯하게 긋기 위해 자를 사용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무수히 많은 연습 덕이다.

2013년 1월 귀국할 때만 해도 그가 프로 화가가 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 율현동 성모자애복지관 레포츠대학에서 수영·승마·볼링 등을 배우며 지내던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강남장애인복지관의 주선으로 멘토 화가에게 일대일 수업을 받게 됐고, 그가 놀랍게 빠른 속도로 그림 그리는 모습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그의 작품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위치 전도)’ 기법이 보인다고도 했다. 2013년 말 단체전을 시작으로 2014년 중국 칭다오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관객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첫 개인전 수익금으로는 중국의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의 수술비를 대기도 했다. 또 올여름 서울 광화문 신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전시된 작품 70여 점이 모두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도 강원도 속초에서 그의 작품과 앤디 워홀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어머니 임씨는 “부열이는 행복하다”면서 “장애·비장애를 떠나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행복감을 끌어올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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