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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앵커브리핑] '저는 칼을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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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를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속 깊이 빨아넣었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평생 옆구리에 칼을 차고 살았던 무인. 그에게 칼이란 사람을 지켜내기도, 베어내기도 하는 두렵고도 두려운 무엇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칼을 이야기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칼을 쓰는 사람입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입에서는 기자들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외과 의사가 쓰는 칼과 살인자가 쓰는 칼은 칼 잡는 각도만 다를 뿐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칼을 쓰는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는 의사로서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죠.

탈출한 북한 병사에 대한 지나친 관심… 영화 같은 스토리를 기대했던 언론들…과도한 신상 털기와 의료진의 영웅화…

이 모든 것들은 실제 칼을 쥐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었을 테니까요.

의료진이 정작 갈망했던 것은 북한 병사가 아니었더라도, 또한 부유한 권력자의 지인이 아니더라도 언제라도 중증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국가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리고 오늘도 이른바 작심 발언을 이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언론인들이다…"

이런 그의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언론, 당신들도 칼을 쓰는 자들이 아니냐… 하는 것이겠지요.

언론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갔는가를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과정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

언론이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청년의 신상과 좋아하는 노래와 몸속에 있는 기생충… 따위뿐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언론은 또 다른 칼잡이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고, 그래서 언론은 쥐어진 칼을 다시금 유심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를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속 깊이 빨아넣었다"

오늘(22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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