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옆집 100만원에 산 세탁기, 150만원에 사야한다면?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삼성·LG, 美수출량 절반 100만대가량 영향권 이익 감소보다 현지 유통망·소비자가 더 걱정 [비즈니스워치] 이학선 기자 naemal@bizwatch.co.kr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세탁기 세이프가드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은 것도 아니다. 이번 조치로 미국에 수출하는 삼성·LG 세탁기 중 연간 100만대 가량이 향후 3년간 고율의 관세부과 대상이 될 전망이다.

비즈니스워치



◇ '연간 100만대', 관세 50% 적용될수도

ITC의 권고안은 삼성·LG가 미국에 수출하는 대형 가정용 세탁기에 50% 관세를 매겨야 한다는 월풀의 기존 요구보다는 완화된 것이다. 120만대까지는 현재 적용되는 관세(0%)를 유지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만 최대 50%까지 관세를 물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삼성·LG가 정확한 수출물량을 공개하고 있진 않지만 국내 가전업계는 두 회사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 규모가 연간 200만~250만대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월풀은 이보다 많은 300만대가 미국으로 수출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내 가전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결국 ITC는 월풀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관세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 등을 고려해 삼성·LG가 수출하는 세탁기의 절반 정도에만 고율의 관세를 부과토록 하는 절충안을 제시한 셈이다.

이날 ITC 결정 이후 양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대목을 부각시키며 보도자료를 낸 것에서도 ITC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월풀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ITC의 권고에 고무돼있다"는 표현을 썼고, 삼성전자 북미법인은 "ITC가 월풀의 터무니없는 제안을 적절하게 거부했다"고 논평했다.

◇ '최악은 피했어도…' 부품까지 제재포함

양측 모두 표면적으로는 ITC의 권고를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삼성·LG의 속내는 복잡하다.

이번 결정에서 ITC 위원 4명 가운데 론다 슈미트라인 위원장 등 2명은 관세부과에서 제외한 쿼터량(120만대)에도 최대 20%의 관세를 물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나머지 2명이 0%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합의에 이르진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슈미트라인 ITC 위원장의 안을 따를 경우 삼성·LG는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세탁기에 처음부터 고율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여기에 세탁기 외관과 내부의 세탁통 등 세탁기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도 5만개를 초과하는 수출물량에는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키로 해 미국 현지공장을 통한 우회수출도 지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과 LG는 각각 3억8000만달러, 2억5000만달러를 들여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가동할 예정인데, ITC 권고안대로면 값싼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게 어려워진다. LG전자만 해도 테네시주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이 100만대에 달해 부품 5만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워치

◇ 현지 유통망·소비자 설득 '첩첩산중'

다만 이번 조치가 삼성·LG의 수익성에는 큰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 백색가전의 마진율을 4~5%에 불과하다. 연간 1조원을 수출한다고 가정하면 500억원 안팎의 이익이 남는 구조로, 미국 수출물량(지난해 10억6000만달러)의 절반에서 차질이 발생해도 실제 손실로 이어지는 금액은 걱정만큼 크진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가전부문에서 각각 2조7200억원, 2조5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오히려 이번 조치로 삼성·LG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와 브랜드 인지도, 미국 현지 유통망 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더욱 고민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세탁기임에도 120만대 쿼터량에 속한 세탁기(관세 0%)와 그 이후 통관한 세탁기(관세 50% 부과) 사이에 판매가격이 심하게 차이날 경우 현지 소비자와 유통망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얼마전까지 1000달러(약 100만원)에 팔던 세탁기를 1500달러에 팔겠다면 제품가격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며 "결국 제조사와 현지 유통망이 얼마나 고통을 분담할지 등이 논의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응책 부심…현지공장 가동 앞당겨

삼성·LG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ITC 권고안보다 수위가 높은 제재를 내리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함께 공동 대응하고 미국 현지공장의 활용도를 높여 세이프가드의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북미법인은 "관세 부과는 가격상승과 제품 선택권,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입장을 재차 피력하며 "미국 행정부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LG전자의 경우 오는 2019년 예정된 테네시주 세탁기 공장의 가동시점을 앞당길 방침이다. 미국산 부품을 사용해 현지에서 생산하면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관세 50%' 영향에선 벗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워치(www.bizwatch.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