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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취재파일] '황제' 두쿠르스 넘은 윤성빈 "평창에서는 결국 장비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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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차 승부 가르는 '썰매 날 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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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올 시즌 첫 월드컵에서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에게 0.11초 뒤져 은메달을 차지한 윤성빈은 경기 직후 "하루 만에 날씨가 너무 급격하게 바뀌는 바람에 썰매 세팅에서 조금 뒤처진 것 같다"고 패인을 분석했습니다. 당시 레이크플래시드는 대회 직전까지도 기온이 영상 10도로 봅슬레이 4인승 경기가 취소될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습니다. 봅슬레이 4인승의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달리고 나면 트랙 얼음이 깨질 우려가 있어 대회 주최 측에서 취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윤성빈이 출전한 남자 스켈레톤 경기가 열린 날, 레이크플래시드에는 새벽부터 폭설이 내렸고 기온도 영하 12도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기온이 급강하했는데 이에 맞는 적절한 썰매 날을 장착하지 못해 속도를 더 내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우승을 차지한 두쿠르스 역시 "윤성빈이 주행에서는 별다른 실수가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장비 세팅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시즌에는 레이크플래시드에서 5위로 부진했는데 올 시즌에는 장비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며 자신의 우승 요인을 '장비'로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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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경기 당일 기온과 얼음 온도 그리고 얼음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썰매 날을 장착해야 합니다. 기온이 낮아 트랙 얼음이 꽁꽁 얼어있을 경우에는 두께가 얇은 날을 사용하고, 반대로 기온이 높아 얼음이 무른 상태일 경우에는 두께가 넓은 날을 사용합니다. 얼음 단단하면 아무래도 두께가 얇고 날카로운 날이 표면에 잘 박히기 때문이고, 얼음이 물러 물기가 많으면 두께가 넓은 날이 잘 미끄러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스켈레톤의 경우 썰매 날 하단부에 홈과 에지(edge)가 있어 무릎으로 눌러가면서 조종을 하는데, '트랙 얼음과 날의 궁합'이 잘 맞지 않을 경우 그만큼 조종하기가 어렵고, 속도도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날 세팅'은 100분의 1초를 다투는 썰매 종목에서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꼽힙니다. 규정상 날 세팅은 경기 시작 45분 전까지 완료해야 하며, 한 번 세팅한 날로 2차 레이스까지 계속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1차 레이스에서 날이 잘 안 맞는다고, 2차 레이스에서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윤성빈은 지난 일요일 미국 파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파크시티에서도 경기 당일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적절한 날을 선택했고, 두쿠르스를 0.63초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최고 속도도 시속 131.9km로 출전 선수들 가운데 가장 빨라 날 선택이 잘 이뤄졌음을 입증했습니다. 영국 출신 리처드 브롬리 주행 및 장비 코치가 윤성빈의 날 세팅 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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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매 날 5개→10개…선택의 폭 늘려

윤성빈은 지난 시즌까지는 썰매 날 5개를 갖고 트랙 얼음 상태에 맞는 것을 골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올 시즌부터는 새로 만든 날 5개를 추가해 모두 10개의 날을 갖고 매 대회 테스트 후 실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트랙 온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힌 것입니다. 예컨대 예전에는 얼음 온도 0도, 영하 5도, 영하 10도에 맞는 썰매 날을 보유했다면, 이를 더욱 세분화해서 영하 2.5도, 영하 7.5도에 맞는 썰매 날도 추가한 것입니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은 "독일과 라트비아 같은 썰매 강국은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여러 트랙에 최적화된 썰매 날만 수십 개를 보유하고 있다"며 부러워했는데, 우리도 거기에는 미치지 못해도 날 개수를 두 배로 늘려 경기력 향상을 꾀하고 있습니다. 또 썰매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리처드 브롬리 코치가 올 시즌을 앞두고 평창 트랙의 특성에 맞는 썰매 제작에 착수해 2대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기존 썰매는 가속보다는 부드러운 코너링에 중점을 둬서 제작됐는데, 여기에 가속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윤성빈은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새로운 썰매가 확실히 속도는 잘 나오는데 레이크플래시드 트랙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며 계속 테스트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성빈은 이제 두쿠르스와 주행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장비 세팅을 누가 더 알맞게 하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조금씩 나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평창 올림픽에서도 결국 장비 싸움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 '스켈레톤 황제'의 축적된 노하우…평창에서는?

두쿠르스 역시 지난 3월 평창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장비 싸움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훈련 일지를 꼼꼼히 써왔습니다. 거기에는 그동안 훈련하면서 시험해왔던 것들이 적혀 있어요. 훈련 방법와 장비 면에서 어떤 것들이 효과가 있었고 어떤 것들이 안 좋았는지, 그리고 식이요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어놓았습니다. 훈련 일지를 적은 노트북을 다시 열어서 올림픽에 대비한 훈련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평창 올림픽이 저의 4번째 올림픽이기 때문에 경험은 충분하고 정신적으로도 준비가 됐습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둔 올 시즌 1승 1패로 접전을 펼치고 있는 '황제' 두쿠르스와 '추격자' 윤성빈은 오는 26일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리는 월드컵 3차 대회에서 경쟁을 이어갑니다. 윤성빈이 지난 시즌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했던 캐나다 휘슬러이기에 이번에도 쾌속 질주를 기대합니다.

[최희진 기자 chnove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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