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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10대 현장실습생들 ‘잔혹사’, 기업·정부·학교가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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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임금 낮아 노동자들 꺼리는 업체

손쉬운 실습생 써 위험노동 시켜

취업률로 학교평가하는 교육당국

학교는 부당처우 호소에 “참아라”



한겨레

현장실습을 나갔다 지난 19일 근무중에 숨진 제주지역 특성화고 3년생 이민호 군의 분향소.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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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에 나선 학생이 크게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가 거듭되는 데에는 실습생을 교육 대상이 아닌 ‘값싼 노동자’로 여겨온 정부와 기업, 학교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임금의 위험한 일자리를 10대로 채우려는 기업과 취업률로 학교를 평가해온 정부, 취업률 높이기에 매달리는 학교 등의 ‘트라이앵글 구조’가 실습생을 위험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해마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학생 6만여명이 ‘산업체 현장실습’을 한다. 기술이나 경험이 없는 이들이 투입되는 현장이란 대개 임금이 낮아 일반 노동자가 꺼리는 곳일 때가 많다. 그만큼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다. 경기도 포천의 제조업체에서 기계 수리 업무로 현장실습을 했다는 이아무개(17)군은 “기계 수리할 때 거의 3m 정도 높이에 올라가야 하는데, 안전장비도 없었다. 환풍 시설이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용접을 했다”고 말했다.

현장실습생이 맞닥뜨리는 ‘위험’은 교육당국의 취업률 성과로 환산된다. 직업계고는 매해 취업률을 집계해 ‘학교 알리미’에 공시해야 하고, 교육청은 이를 학교 평가 지표로 점수화해 각종 예산 배정 등에 활용한다. 현장실습 과정에서 부당한 처우를 겪는 학생한테 상당수의 학교에서 ‘일단 참아보라’며 안일한 대응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9일 사고를 당한 이민호군이 생사를 오가며 병상에 있을 때, 교육부는 “직업계고 취업률이 17년 만에 50%를 넘었다”는 홍보자료를 냈다.

실습생을 위험한 현장으로 내모는 또 다른 원인은 기업에 있다. 김경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은 “기업이 저임금의 충성도 높은 10대 인력을 선점하고자 현장실습제도를 활용하기 때문에 고3을 산업체에 파견 보내는 방식의 현장실습제도 자체에 한계가 있다. 이를 폐지하고 다른 방식의 실습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장실습제도의 주된 목표를 ‘근로’ 대신 ‘교육’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정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2020년 안착을 목표로 법령을 정비하고 있다. 법령상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현장실습을 ‘선택제’로 바꾸고, 실습 기간을 6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현장실습제를 아예 폐지하라”는 전교조, “현행 6개월로 유지하라”는 특성화고교장회 등 양쪽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여러 교육·시민단체에선 안전하면서도 배울 것이 있는 현장실습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위원장은 “직업계고 취업률이 50%를 넘었다고 자축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안전하고 질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도록 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기업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주고 정부의 실습업체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현장실습 도중 학생이 스스로 실습을 중단할 수 있는 ‘실습중지권’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이지혜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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