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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존엄사도 금연처럼 TV광고…내년 1월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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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연명의료법 시범 시행하자 “무의미한 생명연장 거부” 계획서 내

40대 여성 인공호흡기 안달고 숨져

동아일보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한 연명의료결정법의 정식 절차에 따라 스스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포기한 환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정부는 새 법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TV 광고를 방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21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40대 여성 암 환자 A 씨가 최근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거부한 채 숨졌다. 이 환자는 말기암 판정을 받았을 때부터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왔고, 지난달 23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행되자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복할 가망이 없고 2, 3일 내로 숨질 것으로 예상되는 임종기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내년 2월 전면 시행된다.

A 씨는 숨지기 몇 달 전부터 중환자실에 입원해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말 같은 병원의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중순부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의료진과 가족은 A 씨가 의식을 잃자 평소 뜻을 받들어 인공호흡기 등을 착용시키지 않는 ‘연명의료 유보’ 결정을 내렸다. 새 법은 새로운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 ‘유보’와 이미 받고 있는 연명의료를 그만두는 ‘중단’의 무게가 같다고 본다.

2009년 대법원이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인공호흡기 제거’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뒤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이 가망 없는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소생술 포기서(DNR)’를 받아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따지면 법적 근거가 없었다. A 씨는 지난해 2월 제정된 연명의료법에 따라 DNR가 아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연명의료 대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인 첫 환자인 셈이다.

하지만 시범사업 시행 한 달이 넘도록 A 씨처럼 연명의료계획서를 낸 환자는 5명에 불과하다. 말기(수개월 내 사망 예상)나 임종기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사람이 1648명인 것과 대조적이다. 말기, 임종기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어 스스로 계획서를 쓸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가족과 허심탄회하게 연명의료 결정 여부를 논의한 적이 없으면 병세가 악화한 뒤에도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선뜻 상의하기 어려운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새 법이 전면 시행된 뒤 연명의료계획서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개정안 검토를 요청했다. 말기 판정을 받지 않은 환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환자가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술의 종류를 체외막산소공급(에크모), 혈압 조절제 투여 등으로 넓히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초 의료계에서는 환자에게 말기, 임종기를 통보하기 어려운 국내 정서를 감안해 가족이 연명의료계획서를 대신 작성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새 법의 가장 기본적인 취지라는 이유였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평소 의중을 증언해 줄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의 경우 병원윤리위원회가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자는 제안도 마찬가지 이유로 기각됐다.

남은 과제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실질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환자와 가족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그 취지를 널리 알리는 일이다. 현재는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일부 대형 병원만 새 법을 숙지하고 있을 뿐,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중소 병원에선 관련 인식이 높지 않다. 복지부는 ‘생명윤리’ 예산을 늘려 이르면 연말에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를 홍보하는 내용의 TV 광고를 방영할 계획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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