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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국내 첫 합법적 존엄사…2009년 첫 판례 후 8년 만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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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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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뜻에 따라 연명(延命)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 시범사업이 시행된 이래 존엄사를 택해 임종한 환자가 처음 나왔다. 2009년 김 할머니 존엄사 판례 이후 합법적 ‘웰다잉’ 사례가 나온 것은 8년 만이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연명의료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상급 종합병원에서 소화기 계통 암으로 치료받던 50대 남성이 지난주 사망했다. 임종 환자는 약 한 달 전 “연명 의료를 받지 않겠다”며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했고, 의료진은 본인 의사에 따라 임종기에 접어들었을 때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 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시행하지 않았다. 환자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자연사(自然死)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 환자에게 연명 의료 중단 절차에 대해 설명했을 때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며, 적극적으로 ‘연명 의료 중단’ 의사를 표현했다”고 밝혔다. 암 환자들은 대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선 ‘죽음’을 말하지 않는 성향이 강한데, 또렷하게 의사 표현할 능력이 있던 말기 암 환자가 존엄사 의사를 밝힌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란 게 의료계 설명이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대표는 “임종 앞둔 환자가 연명의료를 안 하겠다고 결심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큰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고민할 많은 분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 존엄사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지난달 23일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과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 등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모두 연명의료나 호스피스 이용 여부를 물어 기록해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사전연명의료계획서는 건강한 사람을 포함해 누구나 쓸 수 있는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임종기 환자 등 ‘죽음의 문턱’에 든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작성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보건복지부와 각 병원 등에 따르면 20일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1648명,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자는 7명(이 중 1명 사망)이다.

연명의료 중단 논의는 임종기 환자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과도하게 생명을 연장하다 보니, 정작 환자가 가족과 이별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등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기회까지 박탈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내년 2월 시행될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웰다잉법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이 법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6년 1월 17일 입법화됐다. 지난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와 가족이 살인죄로 기소된 지 18년 만이며, 2009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는 가족의 요구를 대법원이 받아들인 ‘김 할머니 사건’ 이후 6년 만에 마련된 법이었다.

연명의료 중단은 ‘존엄한 죽음’이란 취지를 환자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의료계에선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과도하게 까다롭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50대 남성 환자도 담당 의료진이 임종기에 썼어야 할 서류 하나가 빠진 것이 뒤늦게 발견됐다.

연명의료 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임종 단계에 접어든 임종기 환자가 자신의 뜻을 문서(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연명의료계획서)로 남겼거나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의 뜻이라고 진술하면 의사 2명의 확인을 거쳐 연명치료를 중단하도록 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환자가 스스로 의사를 밝힐 능력이 있는지와 의사 표현 능력이 없을 때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에 따라 경우의 수가 워낙 많고 세부 절차가 복잡하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 경우마다 최소 5~7개의 문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이번 50대 암 환자의 경우처럼 뒤늦게 빠진 서류가 나오는 등 어쩔 수 없는 ‘불법’ 요소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선 “환자에게 말기를 알리고 연명의료를 중담하는 상담까지 하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가족 전원의 합의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등과 같은 반응도 나오고 있다.

[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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