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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앵커브리핑] '기생충 약 먹은 날…하늘은 온통 노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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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이 시간 식사는 다 하셨기를 바랍니다.

1년이면 한두 번 씩 학교에 채변 봉투를 가져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회충이 있는지를 조사해서, 있으면 구충약을 먹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가 남한 맞습니까"

가까스로 의식을 찾았다는 북한 병사 몸속에 가득했던 그 기생충은 이제는 아스라해진 옛 기억을 다시 소환했지요.

언론들은 그 기생충을 대서특필했고 북한의 실상을 새삼 알게된 것처럼 말했지만 설마 그것으로 체제의 우월성을 확인했다고 생각한 분들은 안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무튼… 학자들에 따르면 기생충은 의외로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는군요.

숙주가 죽지 않아야 그 몸에 기생해서 오래오래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생충은 좁은 내장 안에 몸을 웅크리고 숙주가 먹는 음식을 조금씩만 받아먹으면서 함께 평생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기생충의 세계는 이렇게 참으로 교묘하고 교활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끈끈하고도 긴밀했던 청와대와 국정원의 뒷거래 방식이 알려졌습니다.

007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던 돈다발의 상납 방식…CCTV도 없는 으슥한 북악스카이웨이는 영화에 나오는 얘기 같았고, 서울시내 한복판 광화문의 소극장 앞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 속담을 일깨웠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관계 역시 숙주와 기생충과도 같은 관계는 아니었을까. 문제는 누가 숙주이고 누가 기생충과 같은 존재였나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들은 공생 관계였다는 것…

돈을 건넨 쪽은 그렇게 해서 권력을 나눠 받았고, 돈을 받은 쪽은 그렇게 해서 또한 권력을 유지한 관계…

어린 시절 선생님 앞에 서서 구충약을 한 움큼 삼켰던 날, 하늘은 그 독한 약 때문에 온종일 노란빛으로 어지러웠는데…

음습한 곳에서 위정자들이 나눠먹은 우리의 피 같은 세금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또 어지러워지는…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사족 하나를 답니다.

한 숙주 안에서 일생을 마치는 게 아니라 숙주를 중간에 바꿔야 살아갈 수 있는 기생충도 있는데, 예를 들어 중간 숙주가 쥐이고 최종 숙주가 고양이인 기생충의 경우는 쥐의 뇌를 공포에 무감하도록 조정해 급기야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게 만든다 하니…

권력끼리 나눠먹은 돈은 결국 그들 모두를 공포에 무감하도록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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