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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외환위기 20년-다시 빚의 위기앞에 서다] 돌반지로 나라살린 국민들…그들의 삶은 아직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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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부채 줄고 가계·정부는 늘어

자산시장만 팽창 구조조정 더뎌

분수효과·경기부양 한계 드러나

금리상승세 전환…소득성장 관건


결국 위기는 빚의 속도다. 1997년 11월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의 구제금융 신청방침을 공표한다. 꼭 20년 후인 지금, 대한민국은 또다시 빚의 위기 앞에 섰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한국은행이 표본조사한 제조업 부채비율은 296%다. 이후 300% 안팎을 넘나들다 1997년 396%로 치솟는다. 빌린 돈으로 과잉투자를 하다 제때 못 갚은 게 외환위기의 핵심이다. 1997년 1월 한보, 4월 진로 부도가 대표적 사례다.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 통화가치의 급락은 빚더미 외채상환부담을 폭증시켰고, 이후 쌍방울, 기아차, 해태, 뉴코아, 고려증권, 한라, 대우 등이 차례로 무너졌다. 특히 고정환율제와 채권장부가 평가제는 기업들을 ‘깜깜이’로 만들었다. ▶관련기사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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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들은 국민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으로 생명을 되찾았고, 고갈 난 외환보유고는 ‘장롱 밖으로 나온 ‘금붙이’들을 종잣돈 삼아 다시 불어났다. 일자리를 잃고, 소득도 줄었지만 국민들이 세금과 손실을 감수한 덕분이다. 그 결과는 빚의 이동이 진행된다. 1996년 저축액은 기업(비금융)이 52조8000억원, 가계 65조6000억원이다. 위기수습이 이뤄진 2000년에는 82조4000억원, 55조2000억원으로 역전된다. 2016년말 수치는 296조6000억원, 136조원이다.

기업에서 가계로 빚이 이동하면서 위험의 씨앗도 함께 옮겨갔다. 정부는 공공지출을 늘리는 한편 경기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 부동산개발 등의 소비진작책을 펼쳤다. 1997년 11.9%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2003년 20%를 넘었다, 같은 기간 GDP대비 가계총처분 소득은 66.1%에서 59.4%로 뚝 떨어졌다. 2008년 ‘선진국발 빚 사태’인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이 수치가 각각 28%와 57.4%로 크게 높지 않았다. GDP 대비 가계대출 비중도 65%대에 그치며 외풍을 견뎌냈다.

그런데 외환위기와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는 더 이상 건강해지지 못했다. 수출기업을 위한고환율 정책이 펼쳐졌지만 이명박 정부가 외쳤던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밑돌았지만 물가는 급등했다. 가계기업들은 사상 최고 실적과 함께 잉여금이 넘쳐나게 됐지만, 가계 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했다. 특히 공공지출 확대로 국가채무가 급증하며 부채비율이 30%대를 돌파한다.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 폭락이 가져올 폭풍에도 대비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복지지출이 늘며 국가채무가 40%대에 진입한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고유가 수혜 산업이 붕괴했고, 실업률이 급증했다. 선진국 보다 뒤늦게 저금리 정책이 펼쳐졌고,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기부양을 위해 주택 및 대출규제까지 풀어 GDP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2014년 70%를 넘고 2016년 80%를 돌파한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로 좀비기업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빚에 의존한 자산시장 성장만 이뤄졌다. 양극화와 함께 청년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 20년 만에 다시 빚의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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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된다. 전세계적 흐름이다. 반도체 등 일부 수출의 호황 덕분에 경제지표가 좋다. 중동 정정불안으로 유가가 뛰며 인플레 조건도 갖춰졌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부담이 늘어난다. 당장 가계빚 폭탄이 터지지는 않겠지만, 경제가 좋아져서 금리가 오르는데 소득이 늘지 않는다면 빚 폭탄이 정말 터질 수 있다. 빚이 불어나는 속도만큼 위기는 가까워진다. 두 차례의 위기는 넘겼지만, 다가 올 세 번째 위기는 훨씬 더 강력하고 치명적일 게 분명하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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