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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수능생 안전모 5500개 제공' 포항교육청이 거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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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한 기업체 포항지역 수험생 5000여명 안전모 제공 의사

포항교육청, "책상에 안전모 두면 오히려 심리적 불안 우려"

4층 계단에서 뛰어서 운동장으로 대피, 4층 고사장 수험생들 불안

45인승 버스 고사장 앞 대기 진풍경, 학부모들 "분위기 저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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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마켓에 팔리고 있는 안전모.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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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중소기업이 수학능력시험 당일 포항 수험생 전원에게 제공하려던 '안전모'를 포항교육지원청이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모를 보는 것 자체가 수험생들에게 심리적인 불안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포항교육지원청은 경북도교육청 산하 지역 교육청이다.

21일 경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교육부 수능 대책 발표가 있던 20일 부산의 한 중소기업이 "수능날인 23일 포항지역 12개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 5500여명 전원에게 안전모를 제공하고 싶다"는 연락을 포항교육지원청에 했다. 고사장 책상 아래 안전모를 놔두고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는 용도로다.

그러나 지원청 측은 '지진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이라는 이유로 안전모를 받지 않기로 했다. 한 장학사는 "내부 회의를 거쳐서 취지는 공감하고 감사하지만, 거절하기로 방침을 정해 통보했다"며 "학교 안 어딘가에 놔두면 몰라도, 책상 아래 안전모를 놔두는 것은 수험생들에게 '지진'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불안 요소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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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5.4의 강진으로 인해 휴업에 들어갔던 경북 포항지역 각급 학교가 20일 정상 등교했다. 포항시 북구 영신고등학교 외벽이 강진으로 인해 갈라져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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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 20일 수능대책을 발표하면서, 수능을 치르다 경미한 상황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시험을 중지하고 책상 아래로 대피('나' 단계),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시험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익명의 한 수험생 학부모는 "시험을 치는 도중 책상 아래 대피하라는 발표 자체가 수험생들에게 지진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주고 있다. 그런데 안전모를 놔두는 게 과연 심리적 불안을 더 가중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대구지역 교사는 "안전모를 책상 아래에 두는 것 자체가 오히려 수험생들에게 안정감을 더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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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지진 피해 수험생들이 베스트웨스턴 포항호텔측이 마련한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이동하고 있다. 호텔측은 수능시험 당일까지 4박5일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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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의 심리적 불안 문제에 '고사장 계단'도 논란이다. 수능 고사장으로 사용하는 포항지역 12개 중·고등학교는 단층 건물이 없다. 고사장(1개 고사장 최대 28명 입실) 일부는 3층과 4층에 마련된다.

만약 진동이 크고 실질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다'단계, 즉 운동장 대피 상황이 발생하면 높은 층 고사장에선 계단을 이용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야 한다. 포항지역 한 수험생은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고사장이 학교 제일 꼭대기 층인데, 마음이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된다"고 답답해했다. 높은 곳에서 시험을 친다는 것 자체가 수험생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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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포항시 흥해초등학교 건물이 훼손되어 출입 통제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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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당일 학교 밖 분위기에 대해서도 포항지역 학부모들의 걱정이 크다. 경북교육청은 45인승 버스 240여대를 수능 당일 12개 포항지역 고사장 앞에 대기토록 조치 중이다. 지진이 발생하는 등 예비 시험장으로 이동이 필요할 경우 수험생들을 태울 전세 버스다.

시험을 치러 가는 중에 수험생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전세버스 진풍경을 학교 앞이나 운동장에서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지진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안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이런 진풍경을 보고 과연 지진 불안감을 털어버린 채 안정적인 상태로 수능을 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했다.

포항=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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