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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공감한다면, 당신도 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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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일종의 붐이 일었다. 한 여배우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나도'라는 의미를 지닌 이 해시태그의 효과는 엄청났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기억을 공개한 여성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는 공감을,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지지를 얻었다.

그저 '우물 정(#)'에 불과했던 이 기호가 언제부터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을까?

해시태그의 유래


따지고 보면 '해시태그'는 전혀 생소한 단어는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를 '해시(hash) 마크'로 불렀는데, 여기에 '꼬리표'란 의미의 태그(tag)가 붙으며 해시태그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직역하면, 해시 기호를 써서 게시물에 꼬리표를 단다는 뜻이다.

'#'은 본래 IT업계의 C언어에서 쓰던 기호다. C언어를 개발한 미국 벨 연구소의 리치(D.M.Ritche)는 C언어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명령어 앞에 '#'를 붙였다.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해시태그 10년

IT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특별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가 소셜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건 2007년이다. 2007년 8월 23일, 구글의 개발자였던 크리스 메시나(Chris Messina)는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를 써서 정보를 묶는 걸 어떻게 생각해? #바캠프 처럼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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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SNS에 #(해시태그)를 쓴 크리스 메시나의 글.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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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는 공식적으로 이 글을 최초로 해시태그를 사용한 글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8월 23일이 해시태그가 탄생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던 셈. 트위터 코리아는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의미있는 기록들을 공개했다. 등장 첫 해인 2007년 최다 공유된 해시태그의 공유 횟수는 9,000여 회에 불과했지만, 10년이 지난 올해 그 수는 3억 회로 늘어났다. 또한, 한국 관련 가장 많이 쓰인 해시태그는 #BTSBBMAs(빌보드에서 방탄소년단에게 투표해달라는 의미)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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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가 해시태그 10주년을 맞아 공개한 국내와 세계에서 많이 쓰인 해시태그들. /사진=조선DB·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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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시태그가 시작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건 아니다. 2~3년간은 그저 '아는 사람만 아는' 기호에 불과했다. 그러던 해시태그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2010년 '아랍의 봄'이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이란 등 중동 국가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던 이 시기, #튀니지(#Tunisia), #이집트(#Egypt), #시위(#protest)와 같은 해시태그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세상 사람들이 해시태그의 크나큰 존재감을 깨닫게 되자, 인스타그램은 2011년, 페이스북은 2013년 6월부터 해시태그 기능을 도입했다.

초기의 해시태그는 대부분 하나의 '단어' 형태였다. 단순히 발생된 일을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던 해시태그는 점차 그 안에 '생각'을 담기 시작했다. 가령,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단순히 '#Japan 혹은 #earthquake라고 하는 대신 '#PrayForJapan(일본을 애도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쓰는 것이다. 대부분 2~3개의 단어가 결합된 문장 형태로 이뤄지는데, 영문 해시태그일 경우 대문자로 띄어쓰기를 구분하며 한글 해시태그는 _(언더 바)로 단어를 연결한다. 물론 반드시 대문자나 _로 띄어쓰기를 대신해 쓸 필요는 없다. 어떻게 쓰든 자유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해시태그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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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진) 'OCCUPY WALL ST(월가를 점령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시위대. (작은 사진) 트위터를 통해 '월가 시위' 공지가 공유되는 모습. '9월 17일, 월 스트리트, 텐트 지참' 공지 끝에 '#OCCUPYWALLSTREET'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다. /조선 DB·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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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WallStreet

2011년, 세계 최고의 금융회사들이 모여있는 미국 뉴욕의 월가(Wall Street)에서 벌어진 '월가 점령 시위'를 촉발한 해시태그다. 첫 시위는 9월 17일, 소규모의 인원이 월가에서 모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경제난과 실업률에 시달리던 대중들은 월가를 활보하거나 드러누움으로써 불만을 표출했다. 시위가 거듭될수록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는데, 그 바탕엔 '#OccupyWallStreet'라는 트위터 해시태그가 있었다. '#OccupyWallSteet'는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시위를 확산시키는 것을 넘어 비슷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던 유럽에까지 시위를 상륙시켰다. 미국 뉴욕시립대 언론학과의 제프 자비스 교수는 이러한 월가 시위에 대해 "해시태그 반란"이라고 규정했으며,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해시태그 행동주의(Activism)'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월가 시위, SNS·유튜브 타고 전세계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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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진) SNS를 통해 전세계로 확산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 (작은 사진) 국내 한 정치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동참한 모습. /트위터·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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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버킷챌린지

2014년 여름, 일명 '얼음물 뒤집어쓰기' 이벤트가 세계인을 열광시킨 적이 있다. 미국의 루게릭병(ALS·근 위축성 측색경화증) 협회가 관심과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기획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때문이었다. 이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100달러를 ALS 협회에 기부해야 한다. 얼음물을 선택한다면, 그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그와 동시에 도전을 권유하고 싶은 인물 세 명을 지목해야 한다. 이 조건 덕분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IceBucketChallenge'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특히 연예인, 정치인, 스포츠인 등 각계각층의 유명인이 이 이벤트에 적극 참여했는데, 이들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또다른 연예인을 지목하며 그들의 이름 앞에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캠페인의 열기가 절정에 달할 때 즈음엔 물 낭비, 흥미 위주의 이벤트라는 등의 여러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달 여 간의 반짝 열풍으로 1,300억 원에 달하는 기부금이 모였다. ALS 측은 이 기부금 덕분에 루게릭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발견하는 연구에 큰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루게릭病 환자 돕는 '얼음물 샤워' 국내서도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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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테러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마크로, 테러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었다. 상단에 '나는 샤를리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문구가 있다. (오른쪽)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AFP 사무실에서 언론인들이 '나는 샤를리다' 구호가 적인 종이를 들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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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샤를리다

2015년 1월, 프랑스의 시사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파리 본사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편집 회의 중이던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장과 직원 9명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고, 테러 신고를 받고 온 경찰 2명도 사망했다. 이슬람교와 그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듯한 만평을 실었다는 게 원인이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첫 번째 IS에 의한 테러라는 점과, 언론의 자유가 테러로 짓밟혔다는 사실이 전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세계인은 테러의 충격에 의연함으로 맞섰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벌어진 추모 시위에서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테러에 굴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구호는 소셜미디어로도 옮겨가 #JeSuisCharlie, #IamCharlie, #이것은 종교가 아니다 등의 해시태그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상반되는 구호도 나왔는데, '종교를 모욕하는 표현의 자유까지는 허용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관련기사 "나도 샤를리(테러당한 언론사)"… 세계 곳곳서 言論자유 수호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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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기 색으로 물든 세계의 건축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 남산타워,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브라질 예수상.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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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ForParis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같은 해 11월 프랑스의 파리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저녁 9시 파리 시내 콘서트장과 축구 경기장, 거리 등 총 7곳에서 동시에 발생한 테러와 인질극으로 무려 130여 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충격적인 사건 후, 프랑스는 3일간 애도기간을 가지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추모 기간이 끝난 후에는 담담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이며 테러리스트들에 저항했다. 테러가 발생했던 거리에 있는 노천카페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람들이 북적였고, 이들은 그 사진을 SNS에 올리며 '#Je_suis_en-terrasse(나는 테라스에 있다)'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파리에 대한 애도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사람들은 'PrayforParis'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추모 글을 올렸으며,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파랑·흰색·빨강)을 칠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을 상징하는 명소도 프랑스 국기 색으로 물들었다. 뉴욕의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브라질의 예수상 등을 비롯해 한국의 남산타워도 추모 열풍에 동참했다. 다만, 남산타워는 한 번에 3가지 조명을 켤 수 없어 20초마다 세 가지 색이 바뀌는 방식을 이용했다.

▶관련기사 SNS 타고 흐르는 파리 테러 추모 물결… 전 세계인들 동참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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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유럽의회의 총회 도중 여성 의원들이 '#MeToo'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오른쪽) '미투 캠페인'을 촉발시킨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트위터 글. /트위터 캡처·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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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지난 10월 초,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인 하비 웨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여배우와 업계 종사자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러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성범죄를 당한 여성은 #MeToo라고 응답해 달라'는 글을 남긴다. 글이 올라온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8만여 명의 사람들이 '#MeToo' 해시태그를 쓰며 자신이 당한 성범죄를 고백했다. 영화계에서 시작된 일명 '미투 캠페인'은 정계·경제계 등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미국의 언론들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폭력 고발 전염병(epidemeic)'이 미국 전역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썼다.

'미투 캠페인'이 퍼지자 이에 응답하는 '아이디드(#IDiDThat) 캠페인'도 시작됐다. 남성들이 직접 자신이 성추행 혹은 성폭력을 저질렀던 경험을 자백한 것이다. '미투'나 '아이디드' 캠페인은 미국을 넘어 다른 국가로도 확산됐다. 이탈리아·독일·중동 등에선 해당 국가의 언어로 '#MeToo와 비슷한 뜻의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문단_내_성폭력' 이라는 해시태그로 문학계 유명인사들이 저지른 성범죄가 폭로된 적이 있다.

▶관련기사 레이디 가가 등 美 유명스타… #나도 성폭력 피해자
▶관련기사 이번엔 "내가 성추행했다" 자백 해시태그 #IDidThat 번져

한국에서의 해시태그

한국인들은 소셜미디어와 해시태그를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해시태그 중 #일상, #데일리, #맞팔 등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물론 특정한 정치·사회 이슈를 담은 해시태그가 유행했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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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은경, 출처=건돌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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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통계 사이트 '건돌이닷컴'이 2017년 상반기 한국어 해시태그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일상 > #데일리 > #소통 > #셀스타그램 > #좋아요 순으로 나타났다. 영문 해시태그를 포함하면 #love > #instagood > #fashion > #daily > #ootd('Outfit Of The Day'의 줄임말로 '오늘의 의상'을 뜻함) > #selfie 등의 단어가 상위권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 등록된 게시물 중 99%는 해시태그를 하나라도 쓰고 있었으며, 한 게시물에 사용된 해시태그의 수는 평균 17.5개였다. 참고로 인스타그램에서는 한 게시물 당 최대 30개까지 해시태그를 쓸 수 있다.

'놀이'로 번졌던 정치 관련 해시태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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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에서 볼 수 있는 '다스는 누구겁니까' 댓글들. 한·중 교류협력, 삼성전자 영업이익 등 '다스'와 전혀 관계없는 기사에도 이와 같은 댓글이 달리는 등,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로 발전하고 있다. /포털 캡처


#그런데_최순실은?
1년 전, 대한민국이 전례없는 국정농단의 블랙홀에 빠져 있는 동안 유행한 해시태그다. 한 방송사 PD가 '최순실 의혹'을 잊지 말자며 모든 게시물에 이 해시태그를 달자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무 관련 없는 일상 글을 쓰면서도 끝에 #그런데최순실은요? 라고 다는 식이다. 관련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런데우병우는? #그래서차은택은? 등의 응용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다스는누구겁니까
'그런데 최순실'의 1년 후인 최근 유행한 해시태그다. '그런데 최순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글을 작성하더라도 끝에 '#다스는누구겁니까' 라고 붙일 수 있는 게 특징. 기사의 댓글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주진우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장 먼저 썼다고 알려진다. 인터넷 유행어를 넘어 2017년 국정감사에까지 '다스는 누구거냐'는 질문이 등장했다.


해시태그를 통한 캠페인이나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둘로 나뉜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 수면 아래에 있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점에선 우선 긍정적이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도 일반인들이 잘 모르던 루게릭병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저 '폭로' 수준에 그치거나 '반짝 관심' 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해시태그 운동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또한 자칫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다.

인류가 '해시태그'라는 신(新)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 우리가 언제까지 이 기호를 쓸 지는 알 수 없다. 긍정적인 반응와 부정적인 반응도 항상 공존할 것이다.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세상이 점점 더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데 당당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거다. '해시태그의 시대'가 끝난다 해도, 사람들은 또다른 방식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할 것이란 얘기다.

[구성 및 제작=뉴스큐레이션팀 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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